[막오른 김대중시대/지역별 득표율 분석]뚜렷한 지역분할

  • 입력 1997년 12월 19일 06시 19분


15대 대통령선거 결과는 예상대로 극심한 지역분할 양상을 나타냈다. 동서를 나누어 서쪽은 국민회의 김대중(金大中)후보가, 동쪽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가 차지했다. 19일 1시반 현재 김대중후보는 16개 시도 중 영남과 강원지역을 제외한 10개 시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중 서울 인천 경기 충북 제주에선 2위와의 격차가 1∼7%로 비교적 근소한 편이었지만 대전 충남은 2위보다 약 2배, 광주 전남북은 유효투표의 90% 이상을 휩쓸었다. 김대중후보의 득표율은 92년 대선과 비교해볼 때 모든 지역에서 고르게 상승했다. 수도권은 서울이 37.8%에서 44.2%로 6.4%, 인천은 31.7%에서 37.5%로 5.8%, 경기는 32.0%에서 38.8%로 6.8%포인트가 상승했다. 수도권의 득표율 상승분을 득표수로 환산하면 무려 70여만표에 이른다. 충청지역도 평균 27.8%에서 약43%로 무려 15%포인트 가까이 뛰었다. 특히 충남은 28.6%에서 약47%로 두배 가까이 상승했다. 호남지역도 투표율이 시 군별로 1∼2%씩 올라갔다. 제주 역시 32.9%에서 40.4%로 10% 가까이 상승했다. 열세지역도 마찬가지다. 만년 한자릿수에 머물렀던 영남지역에서도 평균 13% 수준을 유지했다. 상승폭이 시군별로 2∼4%포인트씩 올랐다. 특히 경북지역은 92년 9.6%에서 이번에 13.3%로 뛰었다. 강원지역도 10%대에서 20%대로10%가량 껑충 뛰어올랐다. 이처럼 김대중후보의 득표율이 5년전보다 눈에 띄게 상승한 것은 무엇보다 김종필(金鍾泌)공동선대회의의장, 자민련 박태준(朴泰俊)총재와의 이른바 「DJT연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두 보수세력의 상징과 손을 잡아 자연스럽게 종전의 김후보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을 상당부분 희석시킨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이회창후보는 대구 경북 부산 울산 경남 등 영남의 전지역과 강원에서만 1위를 차지했다. 이후보의 득표율은 영남지역에서 평균 60%선이고 강원지역이 42.5%였다. 이후보의 영남지역 득표율은 92년 14대 대선에서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얻은 득표율에 못미치는 수준이다. 김대통령은 당시 영남에서 평균 67%의 득표율을 보였다. 따라서 이후보는 5년전보다 이 지역에서만 7%(약 50만표)를 잃은 셈이다. 충청 지역에서 역시 이회창후보는 김대중후보의 92년 득표율에 크게 못미쳤다. 김대중후보는 당시 평균 33%를 얻었는데 이후보는 평균 27% 정도를 얻는데 그쳤다. 특히 김종필의장의 텃밭인 충남지역에선 무려 13% 정도 떨어졌다. 이처럼 이회창후보의 득표율이 92년 여권의 득표율보다 크게 떨어진 것은 이인제후보에게 그만큼 표를 빼앗겼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인제후보는 부산 경남에서 평균 29%, 대구 경북에서 평균 16%의 득표율을 보였다. 자신의 출신지인 충청지역에선 평균 26% 정도를 얻었다. 이는 92년 정주영(鄭周永)후보가 얻었던 득표율을 웃도는 수준이다. 당시 정후보는 영남에서 평균 13%, 충청지역에서 평균 24%의 득표에 그쳤었다. 당초 이회창후보는 대구 경북에서 70%, 부산 경남에서 평균 60%를 얻는다는 목표였으나 실제 득표는 이보다 10%정도 모자랐다. 또 충청지역에서도 충북에서 분투해 전체적으로 김대중후보와의 표차를 최소화한다는 전략이었지만 실제 결과는 여기에 못미쳤다. 수도권에서도 김대중후보와의 득표율 차이가 2∼3% 정도로 기대했는데 예상밖으로 4%를 넘었다. 〈송인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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