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재정명령」 발동]청와대-정치권 갈등만 증폭

  • 입력 1997년 11월 29일 20시 12분


한나라당 국민회의 국민신당 등 정치권은 29일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금융실명제유보 등을 내용으로 하는 긴급재정명령 발동을 일축한 데 대해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다』며 일제히 비난을 퍼부었다. 치열하게 대선경쟁을 벌이고 있는 3당이 김대통령을 공동타깃으로 삼아 모처럼 한 목소리를 낸 이유는 자명하다. 김대통령이 경제파탄에 대한 책임의 일부를 정치권에 떠넘기려하고 있다는 시각 때문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입장은 3당간에 다소 차이가 있다. 한나라당의 권오을(權五乙)선대위대변인은 이날 성명에서 『김대통령이 아직도 권위와 아집에 사로잡혀 국가부도위기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현명한 판단」을 내리라고 촉구했다. 한나라당은 특히 김대통령이 보완대책을 계속 반대할 경우 국회를 소집, 입법작업을 벌이는 등 강력히 대처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국민회의의 정동영(鄭東泳)대변인도 청와대측이 긴급명령발동거부의 이유로 「위헌소지」를 들고 나온 데 대해 『국가가 사망신고 직전에 있는데도 청와대는 전문가를 동원, 대통령이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데 급급할 뿐』이라고 비난했다. 정대변인은 『지금 우리는 청와대와 헌법조문의 유권해석 문제를 놓고 논쟁하고 싶지 않다』면서 『긴급명령을 하든지, 법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든지 대통령이 즉각 행동에 나서 달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회의는 특히 이날도 한나라당에 대해 『엊그제까지만 해도 실명제를 김대통령 5년 임기 중 최대업적이라고 외쳐온 세력이 상황이 바뀌자 실명제가 파탄의 주범이고 자신들은 책임이 없는 것처럼 행세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라며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후보는 「절반의 책임」을 인정하라』고 몰아세웠다. 국민신당은 청와대 입장표명에 대해 공식적인 논평은 내지 않았다. 그러나 대통령의 안일한 대처는 비판했다. 다만 긴급명령 이외에 금융권과 정부의 자율적 협의 등 대안도 가능하다며 다소 신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인제(李仁濟)후보는 이날 유세에서 『대통령 긴급명령이든 금융단 협의방식이든 가장 빠른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영묵기자〉 ▼ 청와대 ▼ 청와대는 정치권이 주장하는 금융실명제전면유보 또는 대폭보완, 대통령긴급재정명령 발동 요구 등의 처방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거부한다. 김영삼대통령은 29일 비상경제대책자문위에서 『우리의 기초경제여건이 건실한 만큼 금융시장안정 및 금융개혁노력과 함께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사회의 협조가 원활히 이루어지면 어려움을 조속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상황을 진단했다. 청와대는 기본적으로 정치권이 「표」만을 의식, 정치공세를 벌이고 있다는 시각이 깔려 있다. 아무튼 「실명제 보완」에 대한 청와대측과 정치권의 입장은 상당히 다르다. 청와대는 △실명거래의 유지 △종합과세제도 △예금비밀보장 등 실명제의 기본틀을 지키는 범위내에서 최고세율(40%) 부과를 전제로 한 분리과세의 선택이나 모험기업이나 중소기업투자 때 자금출처조사를 면제하는 등의 부분적 보완이 가능하다는 선이다. 또 정치권이 요구하는 무기명장기채권의 발행 등 보완조치는 아예 실명제를 백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는 게 청와대의 입장이다. 특히 청와대측은 금융실명제가 경제파탄의 「주범」도 아닌데다 실명제유보나 긴급재정명령 발동이 IMF가 요구하는 투명성과 개방화에도 역행한다는 주장이다. <이동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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