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경제 다시 살리자/멕시코의 교훈]「긴축」강해야한다

  • 입력 1997년 11월 29일 20시 12분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면 우선 정부 기업 근로자 등 각 경제주체가 당면한 경제문제의 심각성을 솔직히 인정하고 뼈를 깎는 고통을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긴축정책의 강도가 셀수록 경제회복 속도는 빨라질 것이다』 멕시코의 에르네스토 세디요대통령은 지난주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정상회담에서 이렇게 충고했다. 멕시코와 한국 경제의 현주소는 「시소」를 연상케 한다. 멕시코는 시소의 올라가는 쪽이고 한국은 내려가는 쪽이다. 한국은 최근까지 단기간의 고도성장 모델로 개발도상국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런 한국경제가 금융 및 외환위기로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제는 멕시코의 재기 모델을 꼼꼼히 살펴봐야 할 처지가 됐다. 멕시코의 경제위기는 94년 기초 경제력에 비해 과대평가됐던 페소화 가치의 폭락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당시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제금리가 상승하자 멕시코 채권과 주식에 투자했던 자금을 인출, 페소화 가치를 곤두박질치게 했다. 이 와중에 멕시코정부는 페소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외환보유고를 무제한 풀면서 시장에 개입했다. 93년말 2백45억달러이던 외환보유고는 94년말에 61억달러로 격감했다. 바닥을 드러낸 외환보유고도 문제였지만 외국인들은 경제여건에 걸맞지 않은 페소화 지지 노력에 실망했다. 멕시코 금융기관들도 금융위기에 일조했다. 이들은 적절한 신용평가없이 기업 및 가계대출을 늘리는데만 정신이 팔렸다. 그 결과 막대한 부실채권을 떠안게 됐으며 급기야 도산위기에 빠졌다. 금융감독기관도 금융기관의 자산건전성을 제대로 체크하지 못했다. 최근의 한국은 그 재판(再版)이나 다름없다. 결국 멕시코는 총체적 경제위기에 빠져 95년 2월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려 2백72억달러의 구제금융(지원약정 금액은 5백16억달러)을 받았다. 이때부터 멕시코의 눈물겨운 긴축시대가 펼쳐진다. 멕시코정부의 노력은 투자신뢰도 회복과 노사정(勞使政) 합의에 바탕을 둔 강력한 경제안정화시책 실천에 집중됐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갑작스런 이탈로 외환위기가 초래됐다고 생각한 멕시코정부는 우선 외국인들에게 솔직해지기로 했다. 외환보유고 등 주요 경제지표와 정책을 매주 공개하는 등 경제운용의 투명성을 부각하려고 힘썼다. 재정 및 금융부문의 긴축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긴급경제안정화대책」을 실시하고 기업과 노동계의 합의를 거쳐 세금감면, 임금 및 물가인상 억제 등을 포함한 「경제회생방안」을 추진했다. 무역자유화 등 대외개방과 산업구조조정 정책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운송 통신 석유화학 등 대부분의 국영기업을 민영화했으며 한계기업 정리 및 대형화를 유도하기 위해 인수합병시 소득세를 면제했다. 금융개혁에도 박차를 가했다. 부실은행을 정리하기 위해 외국인에게 「은행소유」를 개방했으며 자기자본비율이 낮은 은행에 대해서는 변제순위 후순위채를 발행하게 하고 이를 「예금보장기구」에서 일괄 매입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은행들이 후순위채를 발행하더라도 인수할 기관이 없어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는데 비상이 걸린 상태. 멕시코 외환당국도 외환시장 개입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일관성있는 통화정책을 견지, 페소화 가치는 하락했지만 외국인들에게는 신뢰를 안겨줬다. 강력한 긴축정책을 시행한 결과 멕시코경제는 빠르게 변신했다. 작년 국내총생산(GDP)은 5.1% 증가로 반전했고 경상수지적자는 급격히 줄었다. 그러나 멕시코 경제가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IMF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선 경제구조의 대외의존도가 심화했다. 멕시코는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외국인자본을 유치한 결과 민영화한 공기업은 물론이고 도산한 대부분의 민간기업들이 외국인 손에 넘어갔다. 대외경제연구원 김원호(金元鎬)미주경제연구실장은 『민영화 과정의 외국인 참여는 선진경영기법을 들여온다는 측면에선 긍정적이지만 고부가가치 생산의 주도권을 상실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멕시코의 수출이 최근 호조를 보인다고 하지만 다른 산업에 대한 연관효과가 거의 없는 원부자재 조립산업이 대부분으로 미국의 부품공장으로 전락할 우려가 높다는 것. 또 거시경제지표의 호전에도 불구, 멕시코의 높은 실업률과 빈부격차의 확대는 IMF 지원에 따른 심각한 부작용으로 지목된다. 1백만명이 넘는 실업자와 아직도 높은 물가상승률, 지역간 불균형성장 등 풀어야할 과제가 많다. 이런 점에서 멕시코의 경제위기 극복과정은 아직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멕시코는 또 경제가 한번 파탄에 직면하면 그 고통과 부작용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가 하는 점에서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1년 정도만에 IMF로부터 「해방」될 것이라는 우리 대통령후보들의 말잔치는 각 경제주체들의 각오를 오히려 해이하게 만드는 독약이 될 수 있다. 대우경제연구소 한상춘(韓相春)국제금융팀장은 『한국은 이제 국제사회에서 고도성장전략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전락했다』며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의 대외이미지 실추와 정신적 상실감 등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를 회복하는 데는 앞으로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강운·이용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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