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李4인연대/과정]『뭉치면 이긴다』 막후 24시간

  • 입력 1997년 7월 21일 07시 55분


4人후보“뭉쳤습니다”
4人후보“뭉쳤습니다”
실로 극적으로 이뤄진 「4인연대」였다. 신한국당의 李漢東(이한동) 李壽成(이수성) 金德龍(김덕룡) 李仁濟(이인제)후보는 20일 오후 서울 L호텔에서 만나 「반(反)이회창 4인연대」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이로써 21일 전당대회에서 결선투표가 있을 경우 그동안 「대세론」을 굳혀가던 李會昌(이회창)후보와 「반이 4인연대」 중 한명이 대회전(大會戰)을 벌일 가능성이 커졌다. 이날 「4인연대」의 탄생은 서울지역 합동연설회 직후부터 20일 오후까지 24시간동안 숨가쁘게 진행된 막후협상의 결과였다. 당초 이들 4인 후보가 「반이 4인연대」의 성사를 위해 물밑 접촉을 벌이는 과정에서 이한동 김덕룡후보는 다소 소극적인 반면 이수성 이인제후보가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소극적인 입장을 취한 두 후보는 경선전 후보 단일화가 어렵다면 1차투표 결과를 지켜본 뒤 2위 후보를 밀어주면 된다는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19일 서울합동연설회 직후부터 이수성후보측의 徐淸源(서청원)의원은 발빠르게 3명의 후보들과 물밑접촉을 계속했다. 이한동 김덕룡 이인제후보측과의 연쇄회동을 통해 『「이회창 대세론」을 저지하지 못하면 4인 후보 모두가 설자리가 없다』는 것을 역설했다. 그러나 이한동후보측은 19일 밤까지는 후보직을 사퇴한 朴燦鍾(박찬종)고문의 지지를 끌어내는데 열중하고 이회창후보의 대세몰이를 저지하지 않으면 1차투표에서 이후보가 과반수 득표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다른 후보측과도 물밑접촉을 계속했다. 드디어 20일 날이 밝으면서 경선이 그야말로 초읽기에 들어가자 4인 후보들은 직접 또는 측근들을 통해 막판 합종연횡을 위해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다. 특히 서청원의원은 이날 오전 이한동 김덕룡후보측과의 연쇄 접촉을 통해 결선투표 진출후보를 밀어주자는 「반이 4인연대」의 성사를 위해 집요한 설득작업에 나섰으나 「합의」는 쉽지 않았다. 오후 3시반경 4인 후보중 연장자인 이한동후보가 K호텔에서 3자회동을 주선, 연대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이인제후보를 뺀 「3인 연대」가 먼저 결실을 보았다. 이 때까지는 경선 막바지까지 「홀로서기」에 주력해왔던 이인제후보는 이수성후보측과 가능성을 타진했을 뿐 연대 대상에서는 아예 빠져 있었다. 서청원의원은 3인 후보가 모두 힘을 합쳐도 이미 대세를 장악한 이회창후보를 꺾을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임을 강조하며 이인제후보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제안에 이한동 김덕룡후보가 흔쾌하게 동의했다. 이 때가 오후 4시50분경. 3인후보가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 10분전이었다. 급히 연락을 받은 이인제후보가 달려와 합류, 4인의 후보는 나란히 앉아 「반이 4인연대」 합의사실을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에게 발표했다. 〈최영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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