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長燁(황장엽)씨가 10일 기자회견에서 친북(親北)인사명단을 담은 이른바 「황장엽리스트」의 존재여부와 관련, 「미묘한」 여운을 남겨 파문이 예상된다.
황씨는 일단 명단형식으로 정리된 「리스트」는 없다고 밝혔다.
황씨를 직접 신문한 안기부측도 이날 그동안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황씨가 『남한에 고정간첩 5만여명이 암약하고 있다』 『이들의 명단을 갖고 있다』는 진술을 한 적이 없었다고 부연했다.
당장 정치권 등에 핵폭풍을 몰고 올 만한 민감한 내용은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황씨의 이날 진술은 「황장엽리스트」설의 불길을 잡기보다는 여전히 불씨를 남겨놓은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그 불길이 새로운 방향으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대목도 적지 않았다. 황씨가 「리스트」의 개연성을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황씨는 회견에서 『나는 (대남사업을) 직접 주관한 사람은 아니지만 (고위층에 있는 관계로) 이런저런 과정을 통해 주워들은 얘기는 적지 않다』면서 『그래서 굉장하게 리스트가 있다고 얘기한 것은 없지만 내가 아는 한도에서는 당국자들에게 다 얘기했다』고 말했다.
안기부측이 발표한 조사결과는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황씨는 오랜 세월 동안 북한 고위층의 지위에 있으면서 주워들은 북한의 대남공작 관련 사항과 평양 및 해외체류시 접촉했던 국내외 인물들에 대해 진술했다는 것.
황씨가 밝힌 친북인사의 구체적인 활동동향은 이같은 가능성을 더욱 짙게 했다.
안기부는 조사발표를 통해 『(황씨가 조사과정에서) 북한의 지하조직이 상당수 남한에 침투해 있으며 남한의 내부동향에 대한 보고서가 金正日(김정일)에게 올라오고 있는 것으로알고 있다고 말한 것은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날 조사결과를 발표한 안기부 嚴翼駿(엄익준)제3차장은 『황씨의 진술내용과 관계당국이 갖고 있는 각종 정보자료를 토대로 대공 수사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이를 추적중』이라며 『그 결과 대공혐의가 밝혀지는 대상에 대해서는 당연히 소정의법적 절차에 따라 처리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엄차장의 이같은 발언으로 미뤄 볼때 현재 정부당국은 황씨의 진술을 토대로 그와 접촉했던 친북인사들의 주변에 대해 밀도있는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황씨가 밝힌 진술내용에 대한 당국의 조사결과에 따라 「황장엽리스트」는 아니더라도 친북인사 리스트가 불거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같은 친북세력에 대한 안기부의 수사는 발표시점에 따라 언제든지 정치권 등에 엄청난 핵폭풍을 몰고올 잠재력을 갖게 된 셈이다.
〈정연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