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성금으로 지킨 충무공묘 위토, 이젠 문화재 지킴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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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토 관리 현충사관리소장 원성규씨

현충사 충무문 앞에서 이충무공 위토의 향후 활용 계획을 말하고 있는 원성규 현충사관리소장. 원 소장은 올해 위토에서 나온 쌀을 팔아 문화유산을 관리 보존하는 기금을 마련할 계획이다. 현충사관리소 제공
현충사 충무문 앞에서 이충무공 위토의 향후 활용 계획을 말하고 있는 원성규 현충사관리소장. 원 소장은 올해 위토에서 나온 쌀을 팔아 문화유산을 관리 보존하는 기금을 마련할 계획이다. 현충사관리소 제공
 “충무공께서도 이 쌀이 어려운 후손들을 돕는 데 사용된다는 것을 아시면 무척 기뻐하실 겁니다.”

 지난해 12월 23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소외계층을 돕기 위한 쌀 전달식이 열렸다. 문화재청 산하 현충사관리소가 종로구청과 중구청에 전달한 쌀의 이름은 ‘현충사표 이순신쌀’. 충남 아산시에 있는 충무공 묘의 위토(位土·묘소 관리 비용을 조달하기 위한 토지)에서 생산된 쌀이다.

 충무공 묘에 위토가 있다는 사실도, 그 위토에서 벼를 경작한다는 사실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일. 하지만 충무공 묘 위토엔 일제강점기 민족혼을 지키려 했던 역사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역사의 명맥을 지금은 원성규 현충사관리소장(55·사진)이 잇고 있다.

 1992년 공직에 입문한 원 소장은 문화관광부와 문화재청을 거쳐 2015년부터 충무공 묘와 현충사를 관리하고 있다. 충무공 묘 인근에 있는 현충사는 이순신 장군의 넋을 기리는 사당이다.

 그는 5일 “동아일보 기사가 없었다면 충무공 묘와 위토가 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제강점기인 1931년 본보는 위토의 소유주인 충무공의 13대 종손이 동일은행에 빚을 지고 갚지 않아 땅이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또 당시 편집국장을 보내 위토가 경매에 부쳐진 사실을 기행문 형식으로 싣기도 했다. 본보는 1931년 5월 13일자 사설을 통해 ‘우리들의 역사의 기록 면에서 그 인격으로나 사적으로나 충무공 이순신의 위를 갈 사람이 얼마 없으리라. 그의 위토와 묘소가 경매를 당하게 된다니 이런 변이 또 있으랴. 이런 민족적 치욕이 더 있으랴’라고 보도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기사가 나간 뒤 전국에서 2만여 명이 1만6021원30전(현재 가치로 약 3억7000만 원)을 기부했다. 빚 2400원을 갚고도 남는 금액이었다. 모인 성금을 관리하기 위해 ‘이충무공유적보존회’가 생겼고, 빚을 갚고 남은 돈은 현충사를 짓는 데 쓰였다. 현충사는 숙종 32년(1706년) 처음 건립됐지만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폐쇄됐다. 이후 64년 만에 국민의 힘으로 다시 지어진 것이다. 국내 최초의 내셔널트러스트운동(시민의 기부로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활동)이었던 셈이다.

 원 소장은 국민이 지켜낸 충무공 묘의 위토를 양분 삼아 제2의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을 기획하고 있다. 충무공 묘 위토는 약 1만3000m². 이 중 현충사관리소가 관리하는 면적은 3960m²다. 나머지는 덕수이씨충무공파종회가 소유하고 있다. 원 소장은 위토에서 생산된 쌀을 팔아 과거 충무공 묘의 위토처럼 보존에 어려움을 겪는 다른 문화유산을 관리하는 데 사용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위토는 시민들의 모내기, 벼 베기 체험장으로 사용돼 왔다. 여기서 생산한 쌀은 불우이웃을 돕거나 현충사관리소 기념품으로 활용됐다. 지난해 생산된 1000kg의 쌀 중 400kg은 소외계층 기부에, 400kg은 모내기 행사 기념품 등으로 쓰였다. 나머지 200kg은 문화유산보존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시범사업으로 문화유산국민신탁(이사장 김종규) 회원에게 판매했다.

 “동아일보 기사로 위토가 살아났던 의미를 되살려 보기로 했습니다. 위토로 보존되는 문화유산을 더 넓혀 보자는 취지죠. 기업과 연계해 쌀이 팔린 금액만큼 기업 기부를 받아 이를 다른 문화유산 보존에 사용하는 것이죠. 기부금도, 대상도 지금보다 훨씬 넓어질 것입니다.”

 원 소장은 “올해는 420년 전 정유재란이 일어났던 해”라며 “충무공이 나라를 살린 마음으로 전국의 문화유산을 지켜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충무공#현충사#국민 성금#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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