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홍혜란이 3일 오페라 ‘사랑의 묘약’의 마지막 드레스 리허설에서 아리아를 열창하고 있다. 그는 “내 목소리가 크고 폭발적이진 않지만 작고 아름답게 꾸밀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더 많은 인기와 주목을 받을 수 있었지만 “자만심이 들까 봐”라며 새로운 도전을 택한 사람이 있다. 소프라노 홍혜란(35)은 2011년 벨기에에서 열린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성악 부문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콩쿠르 뒤 국내로 곧바로 들어왔다면 각종 오페라의 주역을 꿰차는 것은 물론이고 스타로 올라설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달랐다. 모든 성악가의 꿈인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메트) 무대에 도전한 것. 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그에게 그 결정에 대한 후회는 1%도 없었다.
“콩쿠르 뒤 바로 한국에 왔다면 많은 관심 때문에 자만심도 들고 나 자신을 조절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인터뷰나 오페라 출연 제의도 많이 왔어요. 하지만 안 하겠다고 했어요. 나 자신을 잘 알기 때문이었어요.”
5년간 그는 단역과 주역의 커버(출연 예정자가 못 나올 경우 대신 출연하는 사람)를 주로 맡았다. 꿈의 무대였지만 주역으로 설 기회는 드물었다. 아시아인 최초의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란 타이틀도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콩쿠르에서 우승했다고 메트 같은 큰 무대에서는 별로 알아주지도 않아요. 메트에서는 콩쿠르 우승자가 아닌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려워요. 저는 제 실력으로 평가받고 싶었어요. 무대에서 주역으로 노래할 기회는 적었지만 세계적인 성악가들과 함께 연습하며 많은 것을 배웠어요.”
그는 콩쿠르 뒤 5년 만에 고국에서 오페라 데뷔 무대를 갖는다. 4∼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서 주역인 ‘아디나’로 국내 팬과 만난다. 이탈리아 오페라이지만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무대는 1900년대 초 한국의 시골 마을이다. 그는 퓨전 한복을 입고 선글라스까지 쓰며 도도한 신여성을 연기한다. 이 역할이 아니었다면 그의 국내 데뷔는 다음을 기약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국내에서 데뷔한다면 아디나 역으로 관객과 만나고 싶었어요. 독일에서 출연 제의도 있었지만 서울시오페라단에서 출연 제의가 왔을 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하겠다고 했어요. 제가 가진 장점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이거든요.”
메트를 떠나 독일로 활동 무대를 옮긴 그는 올해 2월부터 1년간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로 활동한다. 그의 목표는 성공도, 명성도 아니다. 그다운 목표가 있다.
“사람들이 오페라 가수는 경직되고, 뚱뚱하다는 이미지를 많이 가지고 있잖아요. 전 그런 이미지를 깨고 많은 사람이 오페라에 거부감을 가지지 않도록 하고 싶어요.”
리허설에서 본 그는 정형화된 오페라 가수이기보다는 연기와 노래에 모두 능한 뮤지컬 배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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