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태평양 횡단’ 기사가 평범한 나를 바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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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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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몬터레이∼하와이 무동력 레이스
3명과 43일간 노저어 건넌 최준호씨

최준호 씨(왼쪽)가 외국인 팀 동료들과 함께 태평양을 건너가고 있다. 두 팔로 노를 저어 43일 만에 완주한 최 씨의 팀은 13개 참가 팀 중 1위를 차지했다. 최준호 씨 제공
최준호 씨(왼쪽)가 외국인 팀 동료들과 함께 태평양을 건너가고 있다. 두 팔로 노를 저어 43일 만에 완주한 최 씨의 팀은 13개 참가 팀 중 1위를 차지했다. 최준호 씨 제공
그를 바다로 이끈 건 동아일보였고, 망망대해에서 버틸 수 있게 해준 건 군(軍) 경험이었다.

회사원 최준호 씨(34)는 “친한 친구들이 잇따라 세상을 떠나면서 ‘이렇게 아등바등 살다가 죽으면 아무 소용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평범하고 또 평범하게 살았다”는 그는 올해 초 ‘내가 태어난 날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 옛날 신문을 뒤졌다.

동아일보 1980년 8월 7일자 1면.
동아일보 1980년 8월 7일자 1면.
최 씨가 태어난 1980년 8월 7일자 동아일보 1면에는 요트 ‘파랑새호’를 타고 한국인 최초로 태평양을 횡단한 노영문 이재웅 씨(당시 28세)의 기사가 실려 있다.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사업이었다. 최 씨는 “신문을 보는 순간 감전되는 기분이었다. 두 선배가 내게 바통을 넘기는 느낌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최 씨는 ‘선배들은 요트로 성공했으니 나는 두 팔로 노를 저어 태평양을 건너자’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국내 인터넷 사이트 어디서도 관련 정보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미국과 유럽에서는 오션 로잉(ocean rowing) 대회도 많고 기록도 넘쳐났다. 그러나 한국사람 기록은 하나도 없었다. 지금까지 도전한 한국 사람이 없다는 게 오히려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몬터레이를 출발해 하와이에 도착하는 ‘그레이트 퍼시픽 레이스’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혼자 출전하려던 그를 주최 측은 해양 스포츠 경험이 없다며 퇴짜를 놓았다. 결국 그는 안드레 키어스(43·네덜란드), 캐스퍼 재퍼(38·영국), 크레이그 해캣(30·뉴질랜드)과 함께 ‘연합국 팀’을 이뤘다. 최 씨는 “처음에는 동료들 역시 나를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다 뉴질랜드 군 복무 경험이 있는 해캣이 내가 수도방위사령부 특별경호대 출신이라는 점을 높이 사면서 승낙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군 경험은 좁은 배(길이 731cm·폭 182cm) 안에서 버티는 데 큰 힘이 됐다. 최 씨는 “1시간은 노를 젓고 1시간은 휴식을 취하는 생활이 계속 이어졌다. 몸이 늘 물에 젖어 있었고 밤에 자면 추워서 덜덜덜 이가 떨렸다.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었다. 그때 해캣이 ‘뉴질랜드 군인은 아무리 아파도 아프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고 핀잔을 줬다. 자존심이 상해 두 번 다시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힘들 때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하면서 국민교육헌장을 외웠다”며 웃었다.

연합국 팀은 몬터레이를 떠난 지 43일 만인 지난달 23일 와이키키 해변에 도착했다. 13개 참가팀 중 1등이었다. 그렇다고 엄청난 상금이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대회 경비 등으로 4500만 원을 썼고, 몸무게도 10kg이 줄었다.

그는 20일 “기회가 된다면 파랑새호 두 분을 꼭 만나 뵙고 싶다”며 “내가 바통을 이어 받은 것처럼 젊은 친구 중 누군가도 이 바통을 꼭 이어 받았으면 좋겠다. 인생에 다시없을 성취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최준호#노영문#이재웅#태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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