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마지막 은퇴무대 서는 패티 누님께…” 가수 조영남의 편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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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생활 40년동안 만날 누이 뒤였지만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바쁜 세상살이에 이별노래 헌정 못해 착잡하기 그지없네요

2012년, 무던히도 덥던 여름. 패티김 선배로부터 따르릉 전화가 걸려 와 우리는 선배의 단골 냉면집에서 마주앉게 된다. “얘! 나. 금년에 은퇴한다. 아무한테도 얘기 안 했어.”

그러니까 나는 패티김의 역사적 은퇴를 맨 먼저 알게 된 사람이다. 자랑할 만하지 않은가? 그 후 2, 3개월 동안 우리는 매주 한두 번씩 만나 자서전(‘그녀, 패티김’·돌베개)을 완성해 나갔다.

이건 내 개인적인 얘기지만 나 역시 40년 넘게 가수 생활을 해 오면서 오늘날 이 순간까지 패티김 선배를 단 한번도 넘어 보질 못했다. 사람들이 나를 만나면 통상 이런 식으로 얘기한다. “저는 패티김과 조영남을 좋아해요.” 가령 내 이름이 먼저 나오는, “저는 조영남과 패티김을 좋아한답니다” 이런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나 또한 내 이름이 패티김의 꼬랑지에 붙는다고 불쾌히 여겨 본 적이 없다. 패티김이 누구인가. 두말할 것도 없이 내가 태어나 살아온 이 시대를 통틀어 단연 최고 경지에 오른 가수 중의 가수가 아니던가. 게다가 그런 패티김에게서 “얘” “쟤” 하는 동생의 칭호를 듣고, 나 또한 “누님” 혹은 “누이” 칭호를 허물없이 쓰게 됐으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런 패티김이 오늘 최종 은퇴 공연(26일 오후 4시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1599-8151)을 하신다니 나로선 착잡하기 그지없다. 맘 같아선 내가 마지막 무대에서 ‘이별’이란 노래를 헌정해야 마땅한데 공교롭게도 그 시간 나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위문공연 무대에 서야 한다. 그래서 영상 메시지로 대신해 놨다.

KBS 쪽에서 29일 ‘열린 음악회’ 1000회 특집 녹화에 출연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는데도 성사되지 못한 것은 패티김 선배의 단호한 성격을 보여 준다. 은퇴를 했는데 아무리 축하 자리라지만 그런 데 나타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뜻일 테다. 그런 점에서 패티김의 마지막 공연은 참으로 멋질 것이다. 은퇴 공연을 1년 내내 펼친 것은 미국식 은퇴 방식을 따른 것뿐이다.

나는 은퇴 공연이 멋져 보여, 어떤 공연 중에 느닷없이 검정 뿔테 안경을 벗어젖히고 주머니에 숨겨 두었던 은색 안경을 쓰며 “자! 지금부터 저의 은테 공연을 시작하겠습니다”라고 한 적이 있다. 은테 안경을 쓰고 노래하겠다는 일종의 조크였다.

나는 아마도 맥아더 장군식 은퇴를 하게 될 것 같다. 그냥 사라지는 식으로 말이다. 패티김처럼 과감하고 멋진 은퇴는 어려운 일이다. 이제 패티 누님께 한마디 남겨야겠다.

“누이, 만날 누이 꽁무니만 따라다녔지만, 그래도 많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이제 누이가 없어지면 나라도 앞서 나가야 할 텐데, 에휴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못 올릴 만큼 저도 노쇠해졌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세상살이가 그 모양으로 생겨 먹은 것을….”
#패티김#조영남#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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