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사랑했던 디바, 잊을수는 없을거야

  • Array
  • 입력 2012년 2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 패티 김 공식 은퇴 선언… 6월 전국 고별 투어

“가장 멋지고 예쁜 사진으로 써주세요.” 페도라와 벨벳 재킷…. 일흔넷의 디바, 패티 김은 15일 은퇴 기자회견장에서도 화려하고 당당했다. 그는 6월부터 1년간 국내외 주요 도시에서 은퇴 기념 공연을 열 예정이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가장 멋지고 예쁜 사진으로 써주세요.” 페도라와 벨벳 재킷…. 일흔넷의 디바, 패티 김은 15일 은퇴 기자회견장에서도 화려하고 당당했다. 그는 6월부터 1년간 국내외 주요 도시에서 은퇴 기념 공연을 열 예정이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석양이 질 때 노을빛이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이죠. 그런 태양과 같은 모습으로 여러분의 기억에 남고 싶어요.”

70대의 디바는 마지막 무대까지 가장 뜨겁고 화려하게 빛나길 바랐다. 가수 패티 김(74)이 은퇴를 선언했다. 15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패티 김은 “6월부터 시작하는 전국 투어를 끝으로 가수 생활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마무리를 어떻게 할지 10년간 고민했어요. 미련은 많지만 당당하고 멋진 무대를 선사할 수 있을 때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1958년 8월 미8군 무대에서 ‘린다 김’이라는 예명으로 데뷔한 그는 1959년부터 자신이 좋아했던 미국 가수 패티 페이지의 이름을 따라 ‘패티 김’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초우’(1962년) ‘이별’(1972년) ‘사랑은 영원히’(1974년)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1983년)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기며 사랑을 받아왔다.

그에게 공연은 종교의식과 같다. 무대에 오르기 전 언제나 새 구두를 신고 이를 닦는다. 가수생활 50년이 넘은 지금도 “무대가 가장 어렵고 무섭다”고 고백했다. “마흔이 되면서부터는 노래와 공연이 얼마나 어려운 건지 알게 됐어요. 공연하기 몇십 분 전부터 서서 대기하는데 그때마다 ‘심장마비 일으켜서 죽는구나’ 싶을 만큼 긴장을 해요. 지진이라도 일어나서 공연이 취소되길 바랐을 정도예요.”

패티 김은 ‘최초’ 기록의 최다 보유자로 꼽힐 만큼 한국 대중가요사에 숱한 기록을 남겼다. 광복 이후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 초청받은 ‘한류 1호’ 가수(1960년)이며 한국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리사이틀’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1962년). 대중가수로서 가장 먼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했고(1973년), 미국 뉴욕 카네기 콘서트홀(1989년)과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무대에도 한국 가수로는 처음으로 올랐다(2000년).

정상의 자리를 50년 넘게 지킬 수 있었던 데는 철저한 자기관리가 한몫했다. 그는 지금도 매일 1.5km씩 수영을 하고 4∼5km를 걷는다. 이 덕분에 30대에 앨범을 냈던 ‘사랑은 영원히’를 지금도 오리지널키로 부른다.

“팬들은 냉정해요. 어제까지 응원하고 박수를 보냈지만 내일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면 뒤돌아보지 않고 그쪽으로 움직이죠.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어요.”

다시 태어나도 가수 패티 김으로 살고 싶다는 그이지만 은퇴 후에는 평범한 할머니, 자연인 ‘김혜자’(본명)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패티 김의 마지막 공연이름은 ‘이별’이다. 6월 2일부터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을 시작으로 1년간 부산 대전 광주와 외국 주요 도시에서 은퇴 기념공연을 열 예정이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