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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람속으로

아내는 세상 뜨며 소원리스트를 남겼고, 남편은 아이들과 하나씩 실천을…

입력 2010-10-02 03:00업데이트 2010-10-02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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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족이 ‘死別’ 을 거부하는 법…英그린씨 가족 애틋한 사연
케이트(왼쪽)와 존, 두 아이들이 미국 플로리다 디즈니월드를 찾았던 시절. 케이트는 자신이 죽은 뒤 아이들을 꼭 디즈니월드에 한 번 더 데려가줄 것을 부탁했다. 사진 출처 영국 데일리메일
케이트 그린(37·여)과 샌 존 그린(44)이 처음 만난 건 1984년 영국 남서부 서머싯의 클리브던. 존이 청혼을 한 지 10년 만인 1996년 둘은 인생의 동반자가 됐다. 달콤했던 부부 생활은 2006년 초 두 살밖에 안 된 큰아들 리프가 암을 선고받았을 때 첫 위기를 맞았지만 6%의 생존 가능성 속에서 리프가 살아남았을 때 가족은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것 같았다. 그러나 2008년 4월 케이트는 왼쪽 유방암 진단을 받는다. 18개월간 병원에서 화학요법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치료가 불가능해 퇴원을 했고, 케이트와 존, 리프(6), 작은아들 핀(4)은 절망의 수렁에 빠졌다. 케이트가 희망을 꿈꾼 건 이때부터다.

“퇴원했을 때부터 케이트의 시간이 다해가고 있음을 알았죠. 어린 시절부터 서로를 알았기 때문에 말 안 해도 그냥 서로 이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어느 날 새벽 케이트가 죽을 만큼 아파해 하루를 넘기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이들에게 남길 소원 목록을 만들기로 했죠. 케이트는 그로부터 수개월에 걸쳐 A4 용지 3장에 가득 찰 만큼 아이들과 저에게 남기는 소원 리스트를 썼어요. 나중에는 손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아파서 녹음기에 육성을 남겼는데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보니 모두 100개가 넘었죠.”

케이트는 우선 존에게 어린 시절 자신이 방학을 보냈던 고향 해변가와 결혼 프러포즈를 받았던 스위스에 아이들을 데려가 달라고 했다. 또 아이들이 자기 전에 꼭 2번씩 키스해줄 것과 국가 대항 럭비경기를 보여줄 것도 부탁했다. 가능한 한 자주 두 아들의 학교활동에 참석해 격려해줄 것과 놀이방을 만들어줄 것, 가족 모두가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식탁을 마련할 것도 요청했다. 마지막에는 아이들이 안정적으로 클 수 있도록 새 엄마를 빨리 만들어주길 바란다는 말도 남겼다.

두 아들에게는 약속 시간에 늦지 않기, 여자 친구를 존중해주기, 인생은 너무 짧으니 싸우고 나면 꼭 1주일 내에 화해하기 같은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지켜나가기를 원했다. 이와 함께 금연하고, 도로에서 오토바이를 타지 말며, 동시에 두 아들이 함께 군대에 가지 말아 달라는 소원 등을 남겼다.

존은 지난달 30일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과의 인터뷰에서 “아이들을 미국 디즈니월드에 데려가고 대형 식탁을 구입하라는 부탁은 이미 실천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내가 남긴 소원 목록을 하나씩 이뤄가면서 두 아이의 엄마를 영혼의 동반자로 기억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며 “아내를 대신할 다른 누군가를 찾는 일은 너무 어려운 일”이라고 털어놓았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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