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노숙 청산 유원근 씨 결혼까지 성공 ‘겹경사’

  • 동아일보

“다른 노숙인 자활 자극제 되렵니다”

지난달 25일 서울 관악구의 한 식당에서 쉼터 동료들의 축하 속에 결혼식을 올린 한경애 씨(왼쪽)와 유원근 씨. 김지현 기자
지난달 25일 서울 관악구의 한 식당에서 쉼터 동료들의 축하 속에 결혼식을 올린 한경애 씨(왼쪽)와 유원근 씨. 김지현 기자
“내 인생에도 처음으로 책임져야 할 식구가 생겼습니다. 이제 노숙도, 노총각 생활도 끝이에요.” 유원근 씨(56)는 늘 외로웠다. 9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어머니는 오른쪽 눈이 안 보이는 유 씨를 홀로 둔 채 여동생만 데리고 재혼했다. 유 씨는 어서 돈을 벌어 어머니와 동생을 되찾겠다고 다짐했다. 일자리를 찾아 1970년대 전남 목포에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다행히 남들보다 뛰어난 손재주 덕에 돈도 모았고 집도 마련했다. 하지만 술이 문제였다. 외로움이 밀려오는 밤이면 그는 술을 찾았다. 취해 있는 날이 늘면서 어느새 노숙인으로 전락했다. 이후 10여 년간 길거리를 전전하며 소주를 끼니 삼아 지냈다. 119구급대에 실려 병원 신세를 지기도 여러 차례. 유능했던 그의 손은 어느새 부들부들 떨리는 알코올의존증 환자의 손이 됐다.

돈도 결혼도 포기한 채 살던 유 씨에게 2008년 여름, 오랜만에 욕심이 생겼다. 주변의 도움으로 입소한 서울 관악구 봉천동 노숙인 쉼터 ‘반석 희망의 집’에서 만난 한경애 씨(55·여)였다. 한 씨는 폭력 남편을 피해 다니다 노숙인이 됐다. 친정은 물론 친구들 집까지 쫓아오는 남편을 피할 곳은 길거리뿐이었다. 오랜 폭력에 시달리다 생긴 우울증은 하나뿐인 딸과의 인연마저 끊어놓았다. 그 역시 유 씨만큼이나 외로웠다.

유 씨는 쉼터 상담사들에게 한 씨를 소개해 달라고 졸랐다. 술도 끊고 돈도 모으면 중매를 서주겠다는 약속에 유 씨는 다시 일터로 향했다. 방형주 쉼터 사회복지사는 “주말도 없이 매일 일용직 근무를 나가 50만 원 넘게 저금하는 주도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겨울 본격적인 교제를 시작한 두 사람은 자활 의지가 배로 강해졌다. 노숙인 일자리 갖기 사업에 참여해 1000만 원 넘게 저축했다. 서울시에서 노숙인들을 상대로 진행하는 ‘희망의 인문학 과정’도 마쳤다. 서울형 사회적 기업인 강원도의 한 영농조합법인에 취직해 1일부터는 이곳의 첫 ‘사내 커플’이 된다. 지난달 25일 오후 6시, 하객들이 하나 둘 모였다. 여느 결혼식처럼 가족이나 친구는 없었지만 그 대신 노숙인 쉼터 동료 60여 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우리 진짜 잘살 거예요. 다른 노숙인들이 부러워서라도 자활하게 더 열심히 살래요.”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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