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교전 교과서 실어 영웅들 기억해 달라”

  • 입력 2007년 6월 2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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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후원이는 이렇게 환히 웃고 있는데…. 지금이라도 ‘아버지’ 하고 부르며 달려올 것만 같습니다.” 지갑에서 꺼낸 손때 묻은 아들의 사진을 매만지던 서영석(54·경북 의성군) 씨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2002년 6월 29일 북한 경비정의 기습 도발에 맞서 아들(서후원 중사)은 해군고속정의 갑판에서 결사항전하다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5년이 흘렀지만 애틋한 부정(父情)은 사과 농사를 거들면서 어려운 집안 형편을 걱정하던 착한 아들의 손을 아직 놓지 못하고 있었다.》

서해교전 5주년을 이틀 앞둔 27일, 그때의 전흔(戰痕)은 희미해졌지만 유족들의 절절한 아픔과 그리움은 ‘현재진행형’이었다. 일부 유족은 당시 충격 때문에 아직도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

유족들은 6인의 젊은 영령의 숭고한 희생이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 서운함과 울분을 털어놓았다.

고 한상국 중사의 부친인 한진복(61·충남 보령시) 씨는 “지금까지 정부가 내 나라 지키다 전사한 장병들에 대해 진심으로 관심을 갖고 제대로 예우해 준 적이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중사는 교전 당시 적탄의 파편에 가슴을 관통당한 상태에서도 끝까지 키를 잡고 조타실을 지키다 침몰하는 고속정 참수리 357호와 운명을 함께했다. 한 중사의 부인인 김종선 씨는 정부의 무관심과 냉대에 실망해 2005년 홀로 미국으로 떠났다.

한 씨는 “이게 다 북한 살리려 그런 것 아닌가. 마음 같아선 어떤 기념행사도 참석하고 싶지 않다”며 한탄했다.

고 박동혁 병장의 부친인 박남준(51·경기 안산시) 씨는 “그들의 고귀한 희생이 잊혀져만 가 안타까울 뿐”이라며 “서해교전의 참상과 산화한 영령들의 얘기를 교과서에 실어 젊은 세대에게 똑바로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무병인 박 병장은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부상 동료들을 돌보다 전신에 100여 곳의 파편상과 심한 화상을 입고 3개월간 투병하다 꽃다운 생을 마감했다.

지난달 초 청와대 초청 행사 때 일부 유족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그간의 홀대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실질적인 유족 대책을 세워 줄 것을 요구했지만 뾰족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고 조천형 중사의 부친인 조상근(64) 씨는 “서해교전 때나 지금이나 정부의 무관심은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자식 잃은 부모의 애타는 심정을 알아줄 만도 한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올해로 여섯 살이 된 딸이 아빠를 찾으면 조 중사의 부인은 말문이 막힌다.

한 유족은 “냉엄한 안보 현실의 교훈이 이토록 쉽사리 잊혀진다면 제2, 제3의 서해교전이 터졌을 때 누가 목숨 바쳐 싸우겠느냐”며 “그들을 영원히 기억해 달라”고 호소했다.

해군은 28일 부산 한진중공업에서 고 윤영하 소령의 이름을 딴 차기고속정의 진수식을, 29일 경기 평택시의 해군 2함대에서 서해교전 5주기 추모식을 연다.

임기 중 단 한 해도 서해교전 추모식에 참석하지 않았던 노 대통령은 올해도 불참할 것으로 알려졌다. 28일 대전 국군군의학교는 고 박 병장의 흉상 제막식을 연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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