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 고교생」 노충현군, 수해이웃 복구돕다 감전死

  • 입력 1998년 8월 14일 06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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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자원봉사 고교생의 죽음.’

수재지역에서 이웃의 복구작업을 돕던 고교생이 감전돼 숨졌다.

경기 고양시 관산동 공릉천변에 살고 있는 노충현(盧忠鉉·16·신진공고2년)군.

노군의 동네에 집중호우가 닥친 것은 6일 새벽.

급기야 공릉천변의 둑이 무너졌고 금세 허리춤까지 물이 차올랐다. 다행히 노군의 집은 연립주택 2층이어서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이날 오후 물이 빠져나가자 동네는 온통 흙더미로 뒤덮이는 등 엉망이었다.

노군은 그 누구도 시킨 사람은 없었지만 스스로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웃의 어려움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전기가 나가 엘리베이터도 작동하지 않는 이 아파트 11층의 이웃집에 18ℓ짜리 식수통을 지고 계단을 오르기도 했고 이웃 지하솜공장의 물도 퍼냈다.

노군이 가장 많은 시간 동안 땀을 흘린 곳은 집 맞은편 장미농원. 주인 최문석씨(58)가 시각장애인인데다 막내딸이 폐결핵까지 앓고 있어 동네에서 모두 딱하게 여기던 집이었다.

12일 오전 11시경.

장미의 잎과 줄기에 묻은 흙을 씻어내던 노군은 꼬인 호스를 풀려고 움직이다 그만 미끄러졌다. 순간 물퍼내기 작업으로 물에 젖어 2백20V 전기가 흐르고 있던 양수기에 몸이 닿고 말았다.

함께 일하던 후배가 급히 차단기를 내렸지만 노군은 이미 숨을 멈춘 상태였다. 전기쇼크로 인한 심장마비였다.

3남1녀의 막둥이로 자란 노군은 평소 누나가 출가한 뒤로 설거지와 집안청소를 도맡아하면서 ‘딸처럼’ 자라 홀어머니의 애정이 남달랐다.

“아들이 죽어 누워있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나이에 최선을 다해 살아준 것이 고맙습니다.”

빈소에서 어머니 서귀연씨(52)의 눈물은 한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김경달·이훈기자〉d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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