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탁선생 유해봉환 뒷얘기]김구선생이 준 지도로 찾아

입력 1998-05-13 19:59수정 2009-09-25 13:32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그 분이 묻힌 곳입니다. 이국땅에서 의롭게 살다 간 우강(雩岡)을 언젠가는 고국땅에 편히 잠들게 해주십시오.”

해방이후 김구(金九)선생은 임정 국무령을 지낸 우강 양기탁(梁起鐸·1871∼1938)선생의 아들 양효손씨(6·25때 납북)와 며느리 최선옥씨에게 낡은 중국 지도 한 장을 내밀었다. 그날 이후 양씨 부부에게는 아버님 유골을 모셔오는게 가장 큰 사명이자 꿈이 됐다.그러나 이들의 꿈은 오랫동안 이루어질 수 없었다. 한중수교가 이뤄지지 않아 중국을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구선생의 당부는 결국 해방 53년만에 우강의 손녀사위 박유철(朴維徹·60·독립기념관장)씨에 의해 실현됐다. 박씨는 5년전인 94년 처음으로 장모 최선옥씨와 함께 묘소가 있는 중국 장쑤(江蘇)성 율양(陽)시로 갔다.

김구선생이 건네준 지도 한 장을 들고 묘소위치인 율양시 제부진 남문두까지 어렵사리 찾아갔지만 있어야 할 언덕은 사라지고 없었다. 60년대 대대적인 농지정리사업 과정에서 인근 저수지를 메워 논을 만들기 위해 언덕을 깎아내 논으로 변해 있었던 것.

그러나 장모 최씨와 박씨는 단념하지 않았다.귀국한 뒤에도 반드시 유골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2천여만원을 저축했다.고 박은식(朴殷植)선생의 친손자이기도 한 박관장은 한중수교 이전인 80년도 중반 할아버지의 유골을 모셔오려는 노력이 국내언론에 알려지는 바람에 북한의 압력으로 실패로 돌아간 경험을 잊지 않았다. 북한은 한국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하기 위해 독립유공자나 지사 유골의 남한행을 방해해 왔다.

박관장은 97년 11월초 다시 개인자격으로 율양시를 방문, 현지관리의 도움으로 농지정리사업때 양선생 유해를 직접 파묻은 그 마을의 칠순 노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 마침내 양선생 유골이 파묻힌 정확한 지점을 알아내는 순간이었다.

주민 20∼30명을 동원해 한나절동안 논바닥을 파들어가던 중 과연 그 노인이 지적해 준 그 자리에서 인골이 나타났다. 물론 오랜 세월이 흘러 만지면 부서질 정도로 심하게 부식된 상태였다. 박씨는 이중 일부를 잘 말려 옥함에 담은 뒤 인근 절에 맡겨두고 귀국했다.

〈성동기기자〉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