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난청, 두통, 발작… 수재나를 정신병동에 몰아넣을 뻔한 오진[이진형의 뇌, 우리 속의 우주]

  • 동아일보

초기엔 검사로 찾기 어려운 뇌질환… MRI-뇌파검사서 ‘정상’ 판독되기도
증상 가벼워도 뇌 이상 신호일 수도… 조기 진단이 치료 시기-예후 좌우해
무감각 등 작은 이상 신호 자각하고… 오진 막을 정밀 진단기술 개발 시급

영화 ‘브레인 온 파이어’에서 ‘항NMDA 수용체 뇌염’으로 환청과 발작, 이상행동 등을 겪는 저널리스트 수재나. 도키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브레인 온 파이어’에서 ‘항NMDA 수용체 뇌염’으로 환청과 발작, 이상행동 등을 겪는 저널리스트 수재나. 도키엔터테인먼트 제공
《‘정상’ 검사 결과 뒤 숨은 뇌질환

영화 ‘브레인 온 파이어’(2017년)는 미국 뉴욕포스트 저널리스트인 수재나 캐헤일런의 회고록 ‘브레인 온 파이어: 내가 아니었던 시간들(Brain on Fire: My Month of Madness·2012년)’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실존 인물이자 영화 속 주인공인 수재나(클로이 머레츠 분)는 꿈의 직장으로 여겼던 곳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밝은 성격의 20대 젊은이였다. 어느 날, 생일 파티에서 가족들의 축하 노래를 듣던 중 갑자기 잠시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놀랐지만 ‘별일 아니겠지’ 하고 넘겼다. 그러나 이후 직장에서 상사가 말을 하는 중간에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집에서 일을 하다가도, 길거리를 걷다가도 증상이 반복됐다. 이어 왼쪽 팔에 자신에게만 보이는 빨간 자국이 나타났다. 상사와 대화하던 중에는 소리가 울리고 정신을 잃기도 했다. 잠도 잘 자지 못하면서 일상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두통과 복통, 손과 다리의 무감각 증상도 나타났다. 남들에게 들리지 않는 소리에 민감해지고, 직장에서는 인터뷰 중에 부적절한 말과 행동을 하기도 했으며 뇌전증 발작까지 일어났다.

혈액 검사와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했지만 검사 결과는 모두 정상이었다. 두 번째 뇌전증 발작 이후에는 뇌파 검사도 받았지만, 이 역시 의료진은 정상으로 판독했다. 20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담당 의사는 이런 사례를 많이 봤다면서 알코올 섭취와 마약 복용 탓을 했다. 뇌전증 약을 복용하고 음주나 마약을 하지 않으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했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수재나는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하고, 기분이 극도로 가라앉았다가 다시 들뜨는 증상을 겪는다. 스스로는 양극성장애(조울증)라고 진단하지만, 의사는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항정신병 약물을 처방했다. 약을 복용하면서 환청과 환각, 망상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의사는 이런 상황에서도 모든 검사 결과가 정상이라며 증상의 원인은 수재나의 알코올 섭취 때문이라고 다시 주장한다.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는 수재나 부모의 요구 덕분에 결국 수재나는 입원 치료를 받게 된다.

입원 후 담당 의사는 수재나가 조현병이나 발작 후 정신증 가운데 하나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진정제를 투여해 진정시킨 뒤 추가 검사를 해보겠지만, 원인을 찾지 못하면 정신병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일주일 동안 검사를 더 했지만 아무런 문제도 찾지 못한다. 담당 의사들은 검사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기 때문에 조현병이 맞다고 결론 내린다. 그리고 정신병동으로 수재나를 옮기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부모와 남자 친구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에 의료진 중 한 명이 결국 다른 의사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그 의사는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은 채 수재나를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수재나가 시계 숫자를 오른쪽 절반에만 그리는 것을 보고, 조현병이나 양극성장애 같은 정신질환이 아닌 오른쪽 뇌의 염증 때문에 이러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이어 오른쪽 뇌에 염증이 생긴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뇌 조직 검사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결국 조직 검사 결과 ‘항NMDA 수용체 뇌염’이라는 자가면역질환임을 밝혀냈고, 치료에 성공한다.

뇌 질환은 지금까지 진단이 매우 어려웠다. 수재나는 부모와 남자 친구의 극진한 노력 끝에 명의를 만나 치료에 성공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행운을 얻지 못하는 환자가 훨씬 많을 가능성이 크다. 잘못된 진단을 받아 고생하고 있는 환자도 있을 것이고, 초기에 발견했다면 치료할 수 있었음에도 뒤늦게 진단받은 환자도 있을 것이다.

뇌 질환 환자는 고통스러운 증상을 겪는데도 여러 검사를 해보면 검사 수치가 정상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문제가 없어서라기보다 현재의 기술로는 문제를 찾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수재나도 그런 이유로 뇌 MRI, 뇌파 검사, 혈액 검사, 감염병 검사 등 다양한 검사를 받았지만 모두 정상이었다. 그래서 담당 의사는 정량적인 진단 검사가 존재하지 않는 정신병일 것으로 추정하고 정신병동 입원을 권유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수적이다. 첫째,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과 같은 증상을 무시하지 않고 문제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다. 우리는 흔히 몸에 이상이 생겨도 일시적인 현상으로 생각하고 넘기기 쉽다. 하지만 소리가 들리지 않거나 무감각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뇌신경계 문제일 수 있는 만큼, 아무리 작은 증상이라도 눈여겨봐야 한다. 작은 이상 신호를 조기에 알아차리고 병원을 찾는 것만으로도 치료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

둘째, 이러한 가벼운 증상만 있는 단계에서도 뇌의 문제를 진단해낼 수 있는 기술이다. 이런 기술이 있었다면 수재나는 발작을 하고 나서야 병원을 찾았더라도 곧바로 원인을 찾아 치료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 이러한 진단 기술이 발전한다면 더 많은 환자가 병이 악화되기 전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각자의 노력과 신기술, 그리고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함께한다면 미래의 수재나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즉시 검사를 통해 원인을 찾고 치료받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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