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대한민국 대도약’, 꾸준한 진척이 관건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7월 14일 23시 15분


우수 병원도, 대기업 본사도 모두 수도권에
균형발전 청사진 처음 제시한 보고회 환영
다음 단계의 주인공은 정부 아닌 기업 돼야
재임 기간 섣불리 성과 자랑 유혹 이겨내길

박상준 칼럼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박상준 칼럼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미국에서 발행되는 유명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매년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병원 250곳의 명단을 발표한다. ‘월드 베스트 전문 병원(World’s best specialized hospitals) 2026’ 명단에는 한국의 16개 병원이 포함됐다. 일본은 15곳, 독일은 22곳, 프랑스는 15곳 등이 들어갔다. 이 네 나라 중 한국의 인구가 가장 적은 것을 감안하면 참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병원의 지리적 분포를 보면 ‘의료 선진국’ 한국의 그늘도 드러난다. 한국에서는 16곳 모두가 수도권에, 그것도 대부분 서울에 집중돼 있다.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명단에 포함된 병원들이 전국에 고루 퍼져 있다. 그 나라들에 비해 수도권 집중이 심한 일본에서도 8곳은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병원은 한국 사회의 지역 불균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예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일본 시가총액 1위를 지켜 온 도요타를 비롯해 많은 대기업이 지방에 본사를 두고 있다. 한국에서는 그런 예를 찾기 어렵다.

대기업이 수도권에 몰려 있으니 좋은 일자리도 그곳에 집중된다.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다 보니 지방에서는 대학도 병원도 점점 시들어 간다. 그런데도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비전이나 청사진을 제시하는 정부가 없었다. 그래서 6월 29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 긍정적인 점수를 주고 싶다.

나는 이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가 언론에 생중계되는 것이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어린 시절 봤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처럼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알맹이 없는 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적 쇼에도 알맹이가 있다면 판단이 달라진다. ‘대한민국 대도약 국민보고회’라는 쇼에는 알맹이가 있었다. 그래서 좀 놀랐고, 그래서 또 반가웠다.

일본에서 ‘소사이어티 5.0(Society 5.0)’이라는 미래 사회 구상과 ‘경제성장전략’이 발표되고,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이 제정되고, 신생 반도체 제조사인 JASM(대만 TSMC가 일본 기업 소니·덴소 등과 함께 설립한 현지 법인)과 라피더스에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동안, 한국에서는 왜 비슷한 움직임이 없는지 의아했다. 왜 미래를 위한 경제 청사진을 내고 그것을 두고 다투는 정권이나 정당이 없는 것인가. 그런데 6월의 보고회에서 그 청사진이 보였다.

물론 그날 발표된 청사진에 구체적인 내용이 담겼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역 균형발전과 정부 예산을 활용한 기업 지원의 방향이 큰 틀에서 처음으로 제시됐다는 점에 점수를 주고 싶다. 이제 겨우 첫걸음을 뗀 것이지만, 첫걸음을 떼었기에 다음 걸음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점이 중요하다. 첫걸음에서 멈춘다면 그 보고회도 허망한 쇼로 기억될 것이다.

향후 십수 년에 걸친 발전 계획의 첫걸음을 떼는 정부에 지금 당장 구체적인 로드맵을 전부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다. 일본 정부의 많은 전략도 처음에는 허술해 보이는 것이 적지 않았다. 여전히 문제도 있다. 그러나 걸음을 멈추지 않고 가다 보니 그동안의 성과와 앞으로의 로드맵이 제법 눈에 들어온다. 말이 많던 JASM은 드디어 반도체 양산을 시작했다.

이제 한국 정부는 다음번 걸음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이때 중요한 것은 이 걸음의 주인공이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가 아무리 다그쳐도 기업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 정부의 지원도 헛돈이 되고 만다. 그러니 정부는 기업의 말을 경청하고, 지방자치단체·지역 주민·기업 사이에서 능력 있는 중재자가 돼야 한다. 기업이 하자는 대로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기업의 말을 경청하고 그 사정을 정확히 파악한 뒤 정부 입장을 정하자는 말이다. 무한경쟁의 첨단산업에서 시장의 지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기업일 수밖에 없지만, 정부 역시 기업의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일방적으로 휘둘리지 않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성과에 조바심을 내는 것도 위험하다. 미니 신도시 하나도 계획을 발표한 대통령의 재임 기간에 입주가 시작되는 일은 없다. 그러니 재임 기간에 성과를 섣불리 자랑하려는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꾸준한 추진력을 보이면서 로드맵을 정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수정되는 것도 많을 것이고 포기할 것도 생길 것이다. 그러나 인내심을 갖고 한 발씩 내디딘다면 어느 순간 성과가 보이고 향후 로드맵이 더 선명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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