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한국 연구한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
尹 포함 최근 韓 대통령 9명 지켜봐… 직접 민주화 이룬 나라서 계엄령 이해안돼
이념 전쟁 격화돼 국력 낭비 심각한 상황… ‘승자독식’ 정치문화 바꾸고 권력 나눠야
이시바, 자민당서 역사 인식 가장 유연… 위기의 국제 정세, 韓日 공유할 것 많아
한일 관계를 40년간 연구한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는 25일 한국의 정치 양극화가 심각해지는 것에 대해 “심각한 국력 낭비”라며 “포용의 정신이 절실한 때”라고 말했다. 도쿄=황인찬 특파원 hic@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이 예상보다 미뤄지면서 한국 정치의 불투명성이 장기화되고 있다. 탄핵 소추 인용과 기각이란 상반된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정치 지형 또한 더욱 양극화되고 있다. 25일 일본 도쿄 메구로구 도쿄대 고마바 캠퍼스에서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65) 도쿄대 교수를 만났다. 그는 지난 40년간 한국 정치와 한일 관계를 연구해 오면서 민주주의 발전과 양국 협력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 온 일본 내 대표적인 지한파 학자다.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한 뒤 1985∼1989년 고려대에서 정치학 박사 과정을 밟으며 한국의 민주화를 현장에서 목도한 학자이기도 하다. 특히 ‘1987년 민주화운동’을 높게 평가해 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기미야 교수는 “국민들이 직접 들고 일어나 민주주의를 성취한 나라에서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야당의 탄핵 소추도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이 이상한 법치국가가 돼 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기미야 교수는 여전히 한국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1987년 민주화운동을 일궈냈고, 한강의 기적을 통해 경제 선진국에 들어선 내재적인 힘을 갖고 있는 나라”라면서 “탄핵 사태로 인한 혼란도 조만간 이겨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치학자로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높게 평가해 왔다. 그런데 한국이 계엄이 선포된 나라가 됐다.
“사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그날은 좀 일찍 잤고, 다음 날 새벽에 깼는데 놀랐다. 스마트폰으로 뉴욕타임스(NYT)를 보는데 한국에서 ‘마셜 로(Martial Law·계엄령)’가 내려졌다는 기사가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북한이 무언가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사를 읽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래서 더 충격이 컸다. 이후 국민을 ‘계몽’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대통령의 주장까지 나왔는데 정말 납득이 안 갔다. 국민을 계몽하기 위해선 얼마든지 다른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대통령이 담화를 하거나 또 정부가 운영하는 매체도 있지 않나.” ―대통령은 계엄의 타당성을 주장한다.
“야당도 문제가 있겠지만 대통령이 상대 세력을 다 반(反)국가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대화와 조정 아닌가. 또 야당은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는 게 중요한 역할 아닌가. 안타깝지만, 한국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바라보기 힘든 상황이다.”
―한국 정치의 극단적인 양극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한국 정치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너무 격렬하게 싸우고 있다. 그런데 사실 둘 사이에는 이념이나 정책에서 그렇게 큰 차이는 없다고 본다. 예컨대 일본에서 자민당이 창당된 ‘1955년 체제’에서 자민당은 보수, 사회당 공산당은 혁신(진보)이라는 완전히 정반대 이념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역사 인식이나 대북 정책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국가 대 반국가’라는 식으로 나눌 정도로 지향하는 정책의 차이가 크지는 않다. 최근 국민연금 개혁안도 양측이 토론과 협의 과정을 거쳐 결국 합의에 이르지 않았나. 이념의 차이보다는 상대를 대하는 언어와 태도 등이 너무 거친 게 극단적인 상황을 조성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왜 갈등은 커지는 것인가.
“어쩌면 한국의 정치 제도와 문화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대통령제는 ‘위너 테이크스 잇 올(Winner takes it all·승자 독식)’이지 않나.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매번 놀라는 게 있다. 가령, 대통령이 바뀌면 장관들은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외교 분야에서 국립외교원장, 세종연구소장, 통일연구원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등도 모두 줄줄이 바뀐다. 대통령의 힘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정권만 잡으면 다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악순환의 되풀이가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한국 정치에서 포용, 협치란 말을 더 듣기 힘들어졌다.
“한국은 북한과 전쟁을 경험했고, 이 과정에서 반공 정서도 강해졌다. 이로 인해 태생적으로 이념적인 갈등을 겪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 점도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이념 싸움에 몰두하는 것은 한국 바깥에서, 한국을 연구해 온 학자의 시선으로 볼 때 지나친 국력의 낭비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한국 정치만의 특수성을 꼽는다면 어떤 게 있다고 보나.
“한국인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그런 기대를 정치인들이 충족시키지 못하니 계속 혼란이 벌어진다. 잘하지 못해서 정권이 교체됐는데 또 불만족스러운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사실 현실적으로 정치인이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킨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런데 예전부터 한국인들은 정치인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면서도 여전히 높은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일본은 어떤가.
“사실 일본은 정치에 대한 기대치가 매우 낮다고 본다. 정권 교체도 극히 드물다. 사회 전체적인 부분에서 정치가 미치는 영향도 한국이 일본보다 크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라디오에서 1시간, 2시간씩 정치 관련 인터뷰나 대담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렇게 정치 얘기만 하는 방송을 일본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 정치에 대한 기대가 작은 일본이 좋은 건지, 기대가 큰 한국이 좋은 건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 부분도 있다. 다만 정치에 대한 기대치에서 한국과 일본 사이에 큰 차이가 있는 건 분명한 것 같다.”
이달 말 퇴임하는 기미야 교수는 이달 11일 마지막 강의에서 한국 정치의 특징이자 장점으로 ‘1987년 민주화운동’을 꼽았다. 민주화운동으로 군사독재 정권을 끌어내렸고, 이후 여러 번의 정권 교체를 통해 시대에 맞는 정책 전환을 만들었다고 그는 평가했다.
―‘1987년 민주화운동’을 한국 정치의 특징이자 장점으로 평가해 왔다.
“공부를 하러 한국에 갔을 때는 전두환 정부 때였다. 정말 시위가 많았다. 그런 극심한 혼란 속에서 한국인들이 자기들 힘으로 민주주의를 성취한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일본은 자기 힘으로 하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에 패배했고, 점령군에 의해 민주화가 됐다. 한국 사람들이 내재적인 힘을 바탕으로 민주화를 이루어 냈다는 건 아주 대단한 것이다. 또 높은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다만, 이제 한국은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서 국가 전체가 아주 달라지는 나라가 됐다. 너무 큰 차이가 생기는데 이는 또 다른 혼란을 야기할 수 있어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그럼 어떤 부분들을 개선하는 게 적절하다고 보나.
“개인적으로는 권력을 분점할 수 있는 의원내각제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하지만 한국은 국회에 대한 불신이 높으니 의원내각제 선호도가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 북한 등을 상대하기에는 권한이 집중된 대통령제가 나을 수도 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정치 제도 못지않게 문화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다소 이상적으로 들리겠지만, 권력을 독점하는 게 아니고 나누는 문화가 필요하다. 물론 대통령제가 승자 독식 형태의 제도인 것을 안다. 하지만 그래도 권력을 나누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상대를 포용하는 정신이 꼭 필요하다.”
올해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다. 기미야 교수는 “한국 상황이 좀 정리가 되면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정권도 한국과의 협력을 진전시키는 데 관심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상품권 배포 논란 등으로 이시바 총리의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져 일본 정계에서 정권 교체론이 제기되는 것에 대해선 “현재 자민당 내에서 이시바를 대체할 사람이 없고, 야당은 정권을 잡을 만한 힘이 없다”며 “이시바 정권은 꽤 오래갈 것 같다”고 말했다.
―이시바 총리의 한일 관계 인식은 어떤가.
“이시바 총리는 역사 인식의 문제에 관해서는 자민당 정치인 중 가장 리버럴한 인식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이시바 정권 시기가 한일 관계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큰 기회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위기의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은 공유할 부분이 많다. 또 두 나라 모두 이런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고 본다.”
―한일 관계를 향한 제언을 한다면….
“한국과 일본은 서로 가지고 있는 고민을 공유하면서 문제를 푸는 지혜를 같이 찾아볼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가령, 격렬해지고 있는 미중 대립, 북한 문제 등을 놓고 한국과 일본이 각각 해결책을 찾는 데는 한계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고민과 이익을 공유하고, 또한 지혜를 갖고 협력하려는 자세가 더욱 필요하다. 이런 모습은 미국, 중국, 북한에 좀 더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한국도 일본도 앞으로 한일 관계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가질 수 있는 외교적 선택지가 넓어질 것이다.”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65)
△1960년 일본 시즈오카현 하마마쓰시 출생 △1983년 도쿄대 법학부 졸업 △1992년 고려대 대학원 정치외교학 박사 △1993년 도쿄대 대학원 박사 과정 수료 호세이대 법학부 조교수 △1996년 도쿄대 대학원 조교수 △2002∼2003년 미국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방문연구원 △2010년 도쿄대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교수 △2025년 정년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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