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대, 한미관계 변수 될 수 있는 디지털 규제[기고/강효석, 대니얼 소콜]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3월 5일 23시 00분


미국의 정치 환경은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 이후 크게 변화했으며, 이는 전통적인 동맹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존의 정치 방식은 그에게 적용되지 않는 듯하다. 그는 미국의 이익이 위협받는다고 판단하면, 전통적인 동맹국조차도 제재 대상으로 삼았고, 이러한 접근 방식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은 지난 수십 년간 미국과의 관계를 통해 경제·사회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누려왔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전통적인 동맹 관계조차도 미국의 이익을 위해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더욱 분명히 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상업적 이익 또한 중요한 고려 요소로 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이익이 위협받는다고 판단하면, 가장 가까운 우방국조차 압박하려 할 것이다.

그는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규제 장벽을 문제 삼고, 관세 부과를 무기로 교역 상대국을 압박해왔다. 이는 미국의 가장 가까운 무역 파트너인 캐나다와 멕시코와의 관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트럼프는 두 국가와의 무역 불균형을 문제로 인식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강력한 관세 정책을 추진했다. 가까운 동맹국조차 트럼프의 경제적 비전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면, 예외 없이 강경한 조치를 당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핵심 무역 파트너조차 이러한 대우를 받고 있는 만큼, 트럼프가 다른 국가에 대해 불만을 가지게 될 경우 그 여파는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정책 변화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심을 파나마, 그린란드, 캐나다, 멕시코, 중국에서 서울로 돌리게 할 가능성이 있다. 한미 관계에서 핵심적인 갈등 요소 중 하나는 한국의 디지털 경쟁 정책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구글, 애플, 쿠팡, 메타 등 미국 IT 기업들을 겨냥한 공정거래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안은 한국의 디지털 생태계- 즉, 성장하는 국내 플랫폼과 개발자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업계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규제 문제는 미국의 대응 가능성을 고려하면 더욱 복잡한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강력한 경제적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지만, 한국의 기술 정책 변화는 국내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큰 동시에 미국과의 무역 갈등을 촉발할 위험이 있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 및 멕시코와의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압박한 바 있으며, 한미 자유무역협정(KORUS FTA) 역시 재검토 대상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과연 이러한 위험을 감수해야 할까? 이는 ‘한국이 디지털 규제를 통해 궁극적으로 무엇을 달성하고자 하는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유럽은 디지털 규제에 있어 가장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왔지만, 최근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주도한 “EU 경쟁력의 미래” 보고서는 유럽의 혁신 경쟁력이 크게 뒤처져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과도한 규제가 오히려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며, 자본과 인력이 규제 장벽이 낮은 국가로 이동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경쟁(DMA), 개인정보 보호(GDPR), 디지털 서비스(DSA) 관련 규제들이 유럽 내 혁신 환경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여 많은 유럽의 기술 기업과 창업자, 핵심 인재들이 미국으로 유출된 것이다. 이는 강경한 규제 접근 방식이 반드시 효과적인 해법이 아닐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에 한국은 디지털 규제에 대해 보다 신중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성급한 규제는 오히려 혁신의 기회를 저해할 위험이 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미 강력한 경쟁법 집행 기관으로서, 디지털 경제 전반에서 플랫폼 기업들을 상대로 여러 케이스를 다루어 왔다. 여기에 추가적인 규제를 도입하는 것이 한국 경제에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올지는 불확실하다. 반면, 혁신이 위축될 위험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문제이며, 여러 부작용 중 일부에 불과하다 하겠다.

특히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규제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가 더욱 자국의 이익을 강조하고, 공격적인 정책을 펼치는 상황에서 한미 경제 관계에 부담을 줄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최근 무역 발표를 보면, 구글, 애플, 쿠팡, 메타 등을 겨냥한 사무실 압수수색 및 기소 위협과 같은 조치는 미국 정부 차원의 강경한 대응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사실 이러한 우려는 트럼프 행정부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실제로 2024년 미국 하원의 캐롤 밀러(Carol Miller) 의원은 한국을 겨냥한 보복 조치로 미국-한국 디지털 무역 집행 법안(U.S.-Republic of Korea Digital Trade Enforcement Act of 2024)을 발의한 바 있다.

한국이 미국과의 중요하고 역동적인 무역 관계에 혼란을 최소화하려면 혁신과 경쟁을 저해하는 규제 및 경쟁적 환경 요소를 줄이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규제 샌드박스 확대, 투자 장벽 완화, 성장 중심 AI 정책 추진, 복잡한 규제 절차 간소화, 기업의 시장 진입과 퇴출을 보다 유연하게 만드는 방안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한미 관계#디지털 경쟁 정책#디지털 규제#글로벌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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