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 반 다이크, 권력은 어떻게 연출되는가?[영감 한 스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7일 23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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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1세와 스튜어트 형제의 초상화

영국의 새로운 국왕인 찰스 3세의 대관식이 올 5월 6일 성대히 거행되었습니다. 사실 ‘찰스’라는 이름은 영국에서 그리 반가운 이름이 아닙니다. 찰스 1세는 영국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신하들에게 붙잡혀 반역죄로 처형당한 비운의 국왕입니다.

아들 찰스 2세는 폐위와 암살 위협에 시달리며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죠. 찰스 2세 이후 오랜만에 찰스라는 이름의 국왕이 등장했습니다. 이를 기념해 역대 찰스 왕들의 미술 세계를 초상화와 엮어 읽어 보겠습니다.

이미지 메이킹의 귀재
후계자가 없었던 엘리자베스 1세의 뒤를 이은 제임스 1세는 원래 스코틀랜드 국왕이었는데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왕위까지 물려받아 최초로 영국 통합 군주가 됩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인 찰스 1세는 강력한 권력을 손에 쥐지 못했고, 이를 위해 이미지 메이킹을 묘안으로 내세웁니다.

여기엔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찰스 1세는 어릴 때부터 병약해 160cm도 안 될 만큼 키가 작았고, 성격마저 내성적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위대하게 그려줄 화가가 필요했습니다. 루벤스 공방 출신으로 촉망받던 33세 안토니 반 다이크가 궁정화가로 낙점됩니다.

안토니 반 다이크, ‘찰스 1세 기마 초상’, 1633년.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안토니 반 다이크, ‘찰스 1세 기마 초상’, 1633년.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반 다이크가 궁정화가로 임명된 이듬해 그린 찰스 1세의 기마 초상은 로마 최전성기 황제들처럼 그를 강력한 지배자로 각인시킵니다. 말을 탄 모습으로 표현해 키가 훨씬 더 커 보이고, 왕의 오른쪽 아래 붉은 옷을 입은 시종이 그를 우러러보고 있습니다.

또 찰스 1세가 사냥하는 모습을 그린 초상화도 그의 탁월한 연출 능력을 보여줍니다. 빛이 찰스 1세의 전신을 골고루 비추며, 챙이 넓은 모자가 왕의 얼굴을 후광처럼 감쌉니다. 또 몸은 옆을 향한 채 고개와 다리만 비스듬히 관람자 쪽을 향합니다. 왼손 팔꿈치가 화면을 향해 강렬한 입체감을 선사하죠. 바로 뒤에 있는 말도 온순히 머리를 조아리며 왕의 권위를 예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술로 이미지를 쇄신하려던 찰스 1세의 노력은 통하지 못했습니다. 스페인,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성과를 내지 못했고 의회와 갈등을 빚게 됩니다. 결국 영국의 정치계는 왕당파와 의회파로 갈려 내전이 벌어졌고, 찰스 1세는 반역죄로 체포된 후 처형장에 세워졌습니다. 찰스 1세는 비록 오명을 썼지만 예술적 안목은 상당히 높았습니다. 그가 수집한 미술 컬렉션 상당수는 지금까지 영국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주요 작품으로 남게 됩니다.

스튜어트 왕조, 비극의 주인공들

안토니 반 다이크, ‘존 스튜어트와 버나드 스튜어트 형제’, 1638년경. 영국 내셔널갤러리 소장. 사진 출처 내셔널갤러리
안토니 반 다이크, ‘존 스튜어트와 버나드 스튜어트 형제’, 1638년경. 영국 내셔널갤러리 소장. 사진 출처 내셔널갤러리
영국 국왕의 권위는 점점 약해지고, 찰스 왕을 배출한 스튜어트 가문 일족도 가혹한 역사를 감내해야 했습니다. 반 다이크가 그린 ‘존 스튜어트와 버나드 스튜어트 형제의 초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스코틀랜드 출신 귀족이자 찰스 1세의 친척으로 공작이나 백작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반 다이크가 궁정화가로 일할 때 그려진 이 초상화는 현재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을 통해 한국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왼쪽의 황색 옷을 입은 사람이 당시 17세의 형 존 스튜어트, 청색 옷을 입은 사람이 한 살 아래 동생 버나드 스튜어트입니다. 그림의 크기가 상당합니다. 높이가 2.4m에 폭이 1.5m 정도로 그림 속 인물들은 실제 인물보다 더 커 보입니다.

이 그림은 형제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으로 포즈에서 풍기는 자신감과 화려한 레이스 장식이 달린 의복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비단 특유의 광택과 매끈한 질감을 생생하게 표현했죠. 이런 점 때문에 영국 귀족들이 반 다이크의 그림을 선호했습니다. 형제가 황색 청색, 대조적인 느낌의 옷을 입고 있는 데다 자세와 시선도 달라 은근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죠.

왼쪽 계단 위에 서 있는 형 존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면, 오른쪽의 동생 버나드는 한쪽 다리를 계단 위에 올리고 고개를 돌려 관객을 바라봅니다. 특히 허리에 왼쪽 손을 올린 버나드의 자세는 찰스 1세의 사냥하는 초상화 속 자세와 거의 똑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감 넘쳐 보이는 두 청년이 맞이할 험난한 인생사를 알게 되면 그림은 달리 보입니다. 형 존은 왕당파의 기병대를 지휘하며 의회파에 맞서 싸우다 1644년 부상으로 사망합니다. 그의 나이 겨우 23세였죠. 버나드 역시 1645년 로턴 히스 전투에서 전사하고 맙니다. 두 형제의 이 같은 비극적 운명을 알고 그림을 보면 반 다이크가 그려낸 당당한 청년 귀족들의 모습이 한편으론 애잔하게 다가옵니다.

이처럼 영국 역사에서 찰스라는 이름은 그리 반가운 것이 아닙니다. 찰스 1세는 처형된 왕이고, 찰스 2세는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죠. 그의 친인척들도 젊은 나이에 비극적 결말을 맞이합니다. 찰스 2세가 1685년 사망하고 337년 만에 등장한 세 번째 찰스 국왕이 역대 찰스 왕들의 징크스를 극복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부디 새롭게 영국을 이끌어갈 찰스 3세는 앞선 찰스 왕들의 운명을 따라가지 않길 마음속 깊이 응원해 봅니다!

이번 주 ‘영감 한 스푼’은 최근 출간된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의 ‘난생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내셔널갤러리 특별판’(사회평론) 속 원고를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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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
정리=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안토니 반 다이크#권력#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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