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인아]자발적으로 뭔가를 한다는 것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7일 23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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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성, 무언가 결핍됐을 때 생기는데
프로는 상사 지시 없이도 스스로 찾고 준비
자발적 행동, 잘하게 하는 강력한 동력이다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그러고 보니 나도 N잡러다. 30년 가까이 한 회사에서 일하다 퇴직한 후론 줄곧 N잡러로 산 것 같다. 책방을 운영하고 몇몇 지면에 글을 쓰고 강연을 하고 프로그램의 진행을 본다. 또 31년 만에 두 번째 책을 출간한 요즘은 저자 모드로 살고 있다. 책을 내고 저자가 되자 그동안 머리로 알고 있던 것을 감동적으로 체감하고 있다. 이 디지털 시대에도 책은 여전히 강력한 콘텐츠여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연결한다는 것. 책을 읽은 이들이 후기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고 책의 내용이나 문장을 공유하면 이런 관심은 다시 저자의 인터뷰나 미디어 출연, 북토크, 강연 등으로 이어진다. 나도 여러 강연을 소화하는 중이다.

내 경우는 기업 강연이 많다. 기업 강연의 청중은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비교적 동질적인 성격의 사람들이므로 무엇으로 어떻게 소통할지 비교적 수월하게 가늠할 수 있다. 반면, 이들은 자발적으로 모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강연을 듣고 싶은 분명한 이유나 동기 없이 또 하나의 업무처럼 의무적으로 참석하는 경우도 많다. 아닌 게 아니라 나도 그랬던 것 같다. 회사에서 강연 참석을 재촉하면 일도 바쁜데 무슨 강연이냐며 투덜댔고 강연장에 가 앉았다가도 급한 업무를 핑계로 중간에 빠져나오기 일쑤였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으므로 기업 강연을 할 때는 특히 청중과의 소통에 신경 쓴다.

이와는 꽤 다른 분위기의 강연도 최근에 경험했다. 대형 서점이 개최한 강연에 연사로 나섰는데 참가비가 있는 유료 강연이었다. 또 저마다 다른 필요와 욕망, 고민을 가진 사람들을 앞에 두고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알 수 없어 긴장됐지만 괜한 걱정이었을 만큼 분위기가 좋았다. 연령대도, 성별도 다른 수백 명의 청중이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해서 들었고 간간이 던지는 질문에 적극적으로 답을 했으며 내 깐에 유머를 구사한 대목에선 큰 소리로 웃으며 화답해 주었다.

그 순간 체코 프라하로 여행 갔던 때가 생각났다.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엔 오래된 중세 천문시계가 있고 매 시간마다 시계 안에 12사도가 나타나 행진을 한다. 이 광경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려든다. 1996년의 어느 가을 나도 그 틈에 있었는데 12사도 인형들의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탄성을 지르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관광객은 웃을 준비가 된 사람들이구나, 즐거워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구나. 자기 돈을 내고 따로 시간을 내어 피곤한 저녁나절 강연장을 찾은 사람들이 흡사 그때의 관광객들 같았다. 그들은 경청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었고 반응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었다. 어째서일까? 그들은 저마다의 필요와 바람을 갖고 자발적으로 모여든 거니까.

이런 자발적인 움직임, 자발적 참여는 어떻게 생기는 걸까? 어느 정도는 결핍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짐작해 본다. 필요하고 원하지만 그럴 수 없을 때 사람은 간절해지고 몸과 마음을 움직여 찾는다. 반대로 원하는 것이 웬만큼 갖춰지면 동력이 떨어진다. 그런데 지금은 3만 달러 시대. 우리의 젊은 시대는 앞선 세대보다 많은 것이 갖춰진 상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절실하게 원하는 게 많지 않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이런 질문을 한다. 자신도 원하는 걸 하면서 살고 싶은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알 수 있느냐는.

요즘 기업들은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직급을 단순화하고 있다. 호칭도 직급을 빼고 부른다. 가령 ‘홍길동 부장님’은 ‘홍길동님’이나 ‘홍길동 프로님’으로 바꾸는 식이다. 프로란 어떤 존재인가? 여러 정의가 있겠으나 나는 ‘self motivated professional’에 주목한다. 프로는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 상사의 지시 없이도 스스로 찾아서 준비하고 일한다. 그런 태도와 노력이 그 사람을 프로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프로로 대접받고 싶으면 그렇게 일하고 움직일 일이다.

2021년에 번역 출간된 책 ‘일을 잘한다는 것’에서 야마구치 슈와 구스노키 겐은 일을 잘하는 것의 핵심으로 ‘감각’을 꼽았는데 나는 이것을 누군가의 지시 없이도 필요한 일을 필요한 때에 스스로 알아서 하는 센스라 해석한다. 그러니까 스스로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잘하게 하는 강력한 동력인 셈이다. 자, 별로 원하는 게 없고 또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면 마음 한구석에 우선 잘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어보면 어떨까? 일터에서 일을 잘하는 것은 조직의 문제 이전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자존감의 강력한 근원이고 또한 자존감은 행복으로 연결되니 말이다.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자발성#자발적 행동#강력한 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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