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에서 만난 한 남자의 낙토[공간의 재발견/정성갑]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29일 23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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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고산(孤山) 윤선도가 불행한 사람인 줄 알 뻔했다. 조선 시대의 문신이며 어부의 사계절 생활상을 노래한 ‘어부사시사’의 시조 작가 말이다. 그가 가꾼 완도의 세연정은 근래 내가 가장 가고 싶어 몸을 달아했던 곳이다. 장영철 건축가의 현장 방문기 덕분이었다. “윤선도의 별서 정원이던 세연정은 한국 최고의 정원이라 할 만하고 윤선도는 산중턱에 암자를 마련해 호연지기를 즐겼다. 아래쪽 정자 주변에는 예술적 감각을 바탕으로 땅과 정원을 조성한 후 호사로운 시간을 누렸다. 문학은 물론이고 의약, 음양, 지리에도 밝은 진정한 멋쟁이였다”는 말을 듣는데 빨리 가보고 싶어 조바심이 날 정도였다. 포털로 윤선도의 생애도 찾아봤는데 호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당쟁에 휘말려 일생을 거의 유배지에서 보낸 사람.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한 달 전, 구례 갈 일이 있어 내친김에 보길도까지 다녀왔다. 해남 땅끝마을에서 여객선에 차를 싣고 30분, 그곳에서 다시 차를 타고 20분. 섬 속으로 계속 들어간다는 사실, 사람 많은 곳에서 점점 멀어진다는 사실이 가벼운 흥분을 선사했다. 마침내 도착한 세연정은 반전의 묘미가 있는 곳이었다. 구불구불 평범하고 좁은 흙길을 따라 들어갈 때만 해도 괜히 왔나? 싶었다. 붕붕 초파리 떼도 계속 따라붙어 신경을 긁었다. 그러다 짠. 널찍한 연못, 그 사이사이 너럭바위가 툭툭 꽂혀 있는 정원이 와이드하게 펼쳐졌다. 또 하나의 잘생긴 별서 정원인 담양 소쇄원이 단차를 이용한 아기자기한 짜임새가 두드러지는 곳이라면 이곳은 무심한 박력이 넘쳤다. 유배라는 큰 올가미에서 뻗어 나오기 힘든 씩씩한 기상이 있었다.

고산 윤선도는 85세에 눈을 감을 때까지 이곳에서 10년을 머물며 25채의 정자와 건물을 지었다. 낙서재라 명명한 집과 사랑방이던 동천석실도 있었다. 세연정에 정자를 짓고 연못에는 돌을 쌓아 다리를 놨다. 10년간 그가 만든 것은 자신을 위한 큰 둥지였고 그 안에 푹 들어가 살았다. 연못을 돌다 옥소대라는 푯말이 있어 따라 올라가 봤다. 세상에. 그 옛날 화랑이 심신수련을 할 법한 기운으로 거대한 바위 몇 개가 수직으로 꽂혀 있었다. 그 위로는 눈부신 하늘. 사투암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윤선도는 활쏘기 연습을 했다. 그렇게 땀을 흘린 다음에는 거처로 내려가 목을 축이고 공부를 하고 노래를 지었겠지. 자료를 찾아보니 하인들의 손을 빌려 술과 안주를 싣고 뱃놀이도 즐겼단다. 그곳에서 나는 진정 럭셔리한 삶을 봤다. 보내고픈 시간과 공간이 완벽하게 합치된 내 무대, 내 세상을 가진 사람. 그는 패자가 아니라 승자였다. 정치에 뜻이 없고, 생활을 예술로 꾸릴 수 있는 이에게 유배는 천국으로 가는 티켓일지도 모르겠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완도#한 남자의 낙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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