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김기용]시(習)의, 시에 의한, 시를 위한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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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차기 최고지도부 ‘시진핑 사단’ 될 듯
‘독재자 타도’ 플래카드 걸린 민심 살펴야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공산당이긴 하지만 그래도 중국공산당은 지난 40여 년 동안 나름의 절차에 따라 권력을 이양하고 승계했다. 27년간 종신 집권한 마오쩌둥(毛澤東) 폐해를 절감한 공산당은 덩샤오핑(鄧小平)부터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시진핑(習近平)에 이르기까지 ‘격대지정(隔代指定·차차기 최고지도자를 미리 지명해 권력 승계를 안정화함)’이라는 세계사에서 보기 드문 제도를 실천했다. 최고지도부인 상무위원회(상무위) 구성원들이 권력을 나눠 갖는 집단지도체제도 주목받았다.

하지만 앞으로 5년을 이끌 차기 상무위 윤곽이 드러나면서 중국이 그동안 이뤄낸 정치개혁 성과는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3일 내외신 기자들 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낼 상무위는 ‘시진핑의, 시진핑에 의한, 시진핑을 위한’ 지도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아직 공식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홍콩과 대만을 비롯한 서방 언론 분석을 살펴보면 차기 상무위원 7명 가운데 시 주석을 제외한 6명 모두 ‘시진핑의 ○○○’라는 별명을 가진 인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서열 1위 총서기는 시 주석이 3연임할 것이 확실시된다. 서열 2위 총리에는 시 주석이 저장성 서기였을 때 비서장을 맡았고 지금도 ‘시진핑 비서’로 불리는 리창(李强) 상하이시 서기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3위는 시 주석 핵심 정책인 ‘중국몽(中國夢)’ 등을 설계해 ‘시의 책사’로 불리는 왕후닝(王호寧) 중앙서기처 서기, 4위는 시 주석이 저장성 서기였을 당시 지역신문 저장일보에 게재한 칼럼 초고를 쓴 ‘시의 필사(筆士)’ 천민얼(陳敏爾) 충칭시 서기가 물망에 오른다.

서열 5위에는 시 주석 정적(政敵) 숙청에 앞장선 ‘시의 칼’ 자오러지(趙樂際) 중앙기율검사위 서기, 6위는 ‘시 주석 칭화대 룸메이트’인 리시(李希) 광둥성 서기, 7위 상무 부총리에는 시 주석 일정을 관리하는 ‘시의 그림자’ 딩쉐샹(丁薛祥) 중앙판공청 주임이 임명될 수 있다.

상무위 구성원이 이처럼 모두 시자쥔(習家軍·시진핑 사단)으로 채워지게 되면 권력 분점을 위해 만들어진 상무위가 ‘시진핑을 위한’ 보좌기구 내지 거수기구로 전락할 확률이 높다.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22일 막을 내리는, 중국공산당 차기 지도부를 결정하는 20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곳곳에서 노골적인 ‘시진핑 찬양’이 이어지고 있다. 외신기자들이 모인 기자회견장에서도 서슴지 않고 “시 주석은 우리 위대한 시대가 낳은 걸출한 인물” “14억 중국 인민 마음속 걸출한 영수(領袖)”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지금 중국공산당이 주목해야 할 것은 시진핑이 아니라 ‘반(反)시진핑’일지 모른다. 당 대회 기간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반독재’ ‘반핵산(PCR검사)’이라고 적힌 중국 주요 도시의 화장실 낙서 사진이 퍼졌다. 수도 베이징에 ‘시진핑 파면’이라고 쓴 플래카드가 걸린 사건은 충격적이다. 최근 기자가 만난 베이징대 학생은 “1989년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DNA를 지닌 베이징대생들이 조금씩 동요하고 있다”고 전했다. 플래카드를 내건 사람을 과거 톈안먼 민주화 시위 당시 맨몸으로 탱크를 막아선 사람에 비유해 ‘제2의 탱크맨’이라고 부른다.

물은 섭씨 99도까지는 잠잠해 보이지만 마지막 1도가 더해지면 펄펄 끓어 냄비 뚜껑을 뒤집는다. ‘시진핑의, 시진핑에 의한, 시진핑을 위한’ 상무위가 그 1도가 될지 모를 일이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kky@donga.com
#중국공산당#시진핑 사단#민심#독재자 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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