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한복판에 韓분식집, 런던엔 포장마차… 현지인들 방문 인증샷[글로벌 현장을 가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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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15구에 2년 전 문을 연 한국 분식집 ‘동네’에서 5일 파리 시민 10여 명이 분식을 즐기고 있다. 아시아계는 보이지 않는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프랑스 파리 15구에 2년 전 문을 연 한국 분식집 ‘동네’에서 5일 파리 시민 10여 명이 분식을 즐기고 있다. 아시아계는 보이지 않는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조은아 파리 특파원
조은아 파리 특파원
‘김밥 12유로, 라면 11유로, 떡볶이 14유로….’ 5일 오후 1시경 프랑스 파리 15구 한 골목 가게 앞.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분식집 메뉴판이 서 있다. 일반적인 한식당 메뉴에 등장하는 불고기 김치찌개 같은 전형적인 음식 품목 없이 분식만 파는 순수 분식점 ‘동네’. 작은 가게를 남녀노소 14명이 앉아 가득 채우고 입구 밖으로도 5명이 줄을 섰다. 생소한 한국 분식을 찾은 손님 가운데 아시아인은 보이지 않았다. 헬멧을 쓴 배달원 서너 명이 가게를 들락날락하고 입구 옆 탁자 위엔 배달을 기다리는 종이주머니 서너 개가 항상 줄지어 있었다. 이 가게 단골 플로리앙 씨는 “김밥은 기름지지 않고 건강에 좋은 편이라 많이 먹는다”며 “요즘 한인마트가 아닌 프랑스마트에서도 한식 재료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한식이 비빔밥 불고기로 대표되는 시대는 지났다. 유럽에서는 한국 분식과 디저트가 대중화되고 있다. 유럽인에게 낯설 법한 칼칼한 고추맛 소스와 물컹거리는 떡의 질감까지 까다로운 이들 입맛을 파고들었다. 한국 분식이 잘 팔린다는 소문에 중국계 자영업자들까지 떡볶이와 한국식 치킨을 팔기 시작했다.
‘홍대 포차’도 영국에 수출
요즘 유럽에 새로 문을 여는 한식당은 백화점식이 아니다. 한두 가지 ‘킬러’ 메뉴로 승부한다. 한식이 그만큼 세분화, 차별화하고 있다. 파리 분식집 동네는 유럽인이 선뜻 먹고 싶어 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떡볶이와 김밥을 주요 상품으로 내세웠다. 2020년 1월 개업한 동네는 올해 8월까지 매출이 1년 전에 비해 30%가량 늘었다. 포장과 배달까지 합해 하루 200∼250인분이 팔린다. 최현진 대표는 “처음에는 떡볶이가 뭔지, 김밥이 스시(초밥)와 어떻게 다른지 오는 손님마다 매번 설명해야 했는데 이제는 그리 많이 설명하지 않는다. 손님들이 잘 알고 오신다”고 말했다.

올 5월 파리 14구에 문을 연 한식당 ‘올리브치킨’도 치킨에만 집중한다. 간판조차 달지 못한 채 개업했는데도 입소문을 타 지난달 매출은 개업 첫 달보다 2배 넘게 올랐다. 하루 평균 60∼100건 주문이 들어온다.

해외에서 뜬 식품 브랜드가 한국에 진출하는 것이 예전 흐름이었다면 요즘은 반대다. 한국에서 뜬 점포 형태가 유럽으로 수출되기도 한다. 한국 홍익대 거리에서 인기를 모은 ‘홍대 포차’는 영국 런던에 올 5월 진출했다. 일반적인 홍대 거리의 ‘포차 문화’를 옮겨왔다. 벽 낙서, 옛 영화 포스터 같은 인테리어와 ‘쏘맥(소주+맥주 폭탄주)’, 막걸리 같은 메뉴가 현지인에게 이색적이고 이국적인 매력을 주고 있다.

프랑스 유튜버가 한국식 감자핫도그를 시식하고 있다. 그는 “돌아다니면서 먹기 편하다”고 소개했다. 유튜브 ‘걸키 르 멀키’ 캡처
프랑스 유튜버가 한국식 감자핫도그를 시식하고 있다. 그는 “돌아다니면서 먹기 편하다”고 소개했다. 유튜브 ‘걸키 르 멀키’ 캡처
유럽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던 분식이 주목받기까진 인스타그램, 틱톡을 비롯한 뉴미디어가 큰 역할을 했다. 파리 분식집 동네에서 떡볶이를 주문한 대학생 켄자 씨는 “이 식당을 틱톡에서 봤는데 여러 음식이 너무 맛있어 보여서 왔다”며 “한국 드라마를 볼 때 이런 음식을 먹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참이었다”고 했다.

독특한 공간이나 음식 사진을 경쟁적으로 올리는 인스타그램 이용자들은 이색적인 한국 분식집, 치킨집을 방문하고 찍은 ‘인증 샷’을 즐긴다. 유럽인에게 한국 분식이 과거에는 시도하기 꺼려지는 메뉴였다면 이제는 자신을 색다르게 표현하는 유용한 도구가 된 셈이다.
중국인이 한국 분식 치킨 팔아
동네에서 만난 파리 시민들은 분식의 ‘단짠(달고 짠)’ 매력은 물론이고 음식이 신속하게 나오는 점도 장점으로 꼽았다. 분식이 더 확산될 가능성도 점쳤다. 파리 음식 관련 잡지사에서 일하는 그자비에 씨는 분식을 먹으며 “프랑스 지방에서 베트남식당이 널리 퍼졌듯 한식당은 리옹 마르세유 툴루즈 같은 지역에서도 잘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분식이 잘 팔린다는 소문이 나자 중국계 자본이 ‘한국 분식’ ‘한국 치킨’ 간판을 걸고 장사를 시작하기도 했다. 음료만 팔던 중국계 버블티 브랜드 ‘디알리’는 올 5월부터 파리 13구 점포에서 떡볶이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김신현 올리브치킨 대표는 “치킨 인지도가 워낙 높아지면서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계 외국인들이 ‘치맥’ ‘한국 치킨’을 강조하며 치킨을 팔기 시작해 놀랐다”고 전했다.
‘디저트의 나라’서 인기 韓디저트
파리 5구 한국식 카페 ‘플러스82’ 입구에서 자리가 나길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파리 5구 한국식 카페 ‘플러스82’ 입구에서 자리가 나길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분식뿐이 아니다. 디저트의 나라 프랑스에서 한국식 디저트가 세련된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5일 찾은 파리 5구 한국식 카페 ‘플러스82’ 입구 앞에는 파리 사람들이 줄을 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빙수 전문인 이곳에서는 팥빙수 망고빙수 녹차빙수 등을 한국식 그대로 선보인다. 이곳에서 만난 파리 시민들은 미숫가루, 유자같이 한국 디저트에 쓰이는 음식재료를 익히 알고 있었다.

마카롱 크레프 같은 디저트 본고장인 프랑스 사람들이 한국 디저트를 찾는 데에는 빙수처럼 얼음을 주로 사용한 디저트가 신선하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이 카페를 네 번째 방문한다는 대학생 모르간 씨는 녹차빙수를 먹으며 “으깬 얼음과 녹차를 활용한 디저트는 처음 본다”며 “우리가 많이 쓰지 않는 재료로 만들어 새롭다”고 말했다. 프랑스 디저트보다 덜 달고 덜 느끼해 건강한 느낌을 준다는 의견도 있다. 미숫가루를 좋아한다는 메허 씨는 “한국 디저트는 설탕이 적절하게 들어가 지나치게 달지 않다”고 했다.

전통 한식 외에 분식 디저트류 등의 판매가 늘면서 한국 음식자재 수출에도 훈풍이 불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파리지사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유럽 국가에 수출된 한국 농·식품은 4억2644만 달러(약 5900억 원)어치였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2%,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전인 2019년 동기에 비해 무려 49.6% 늘었다. 한국 식품기업도 시장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투자를 늘리고 있다. CJ제일제당은 2027년까지 유럽시장 매출을 5000억 원으로 늘리겠다고 7월 발표했다.
“유럽에 기회가 있다”
한인타운을 중심으로 한 전통 한식당들은 유럽에 오랫동안 뿌리내린 교포들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분식, 디저트카페같이 최근 문을 연 한식당은 유럽 창업을 목표로 아예 한국에서 건너온 젊은이들이 주축이다. 이들은 한국에서는 요식업이 포화상태지만 유럽에서는 기회가 있다고 말한다.

최현진 동네 대표는 “프랑스에선 한국보다 음식 재료는 저렴한데 서비스 비용은 높아 이윤이 상대적으로 더 날 수 있는 구조라고 판단했다”며 “프랑스인들은 초기에 접근하기 어렵지만 장기적으로는 충성도가 높아 단골이 많다”고 소개했다. 한국에서 은행에 다니던 최 대표는 입사 5년 차 무렵인 2016년 파리에서 분식집을 열겠다는 꿈을 안고 파리를 찾았다. 프랑스어를 몰라 어학원을 다니면서도 각종 한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며 현장을 익혔다.

프랑스에 온 지 6년 만에 창업 아이디어를 구체화해 지인들과 치킨집을 연 김신현 올리브치킨 대표는 “지금이 한류로 한식이 주목받는 시기인데 한국에선 흔한 치킨을 이곳 사람들은 신선하게 본다”며 “이곳에 기회가 있다”고 힘줘 말했다.



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


#파리#한국디저트#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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