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들을 생각하라[동아시론/장석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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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재난에 휩쓸려간 이웃들
‘먼 곳’의 불행은 내 책임 아닐까
상호 연결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의 불행에도 관대해지지 말자

장석주 시인
장석주 시인
불행은 늘 멀리서 온다고, 불행의 계량적 총량은 누구에게나 균등하다고 믿었다. 살아보니, 그건 잘못된 믿음이었다. 불행은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고, 권세와 영화가 그렇듯이 우리가 짊어지는 불행의 몫은 다르다. 나이든 덕으로, 불행이 전생의 업도 아니거니와 실패와 그 누적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라는 깨침을 얻었다. 불행은 우연의 사태이고, 가장 나쁜 불행조차 흩뿌려지는 비같이 당신과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지난여름 폭우 때 반지하 주거지에 물이 차올라 임차인 가족이 죽음을 맞았다. 보육원 출신 청년은 제 앞날의 암담함을 이기지 못해 목숨을 끊고, 가난과 질병을 짊어지고 막다른 데로 내몰린 세 모녀는 함께 죽음을 선택한다. 이들은 최저 생계비 아래 낮은 지대에서 사는 약자들이다. 우리 사회의 위계에서 낮은 데 그림자가 드리운 곳에 자리한 이들에게 불행이 덮칠 때 국가의 사회안전망은 고장 난 것처럼 작동하지 않았다. 정부의 복지 혜택도,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이들에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이 오직 단 하나의 선택밖에 할 수 없었다.

이 불행에 방관자로 머문 채 잘 먹고 잘산 우리는 아무 책임이 없을까? 이웃의 불행을 아파하지 않고 무심히 흘려보낸 우리는 면죄부를 얻을 수 있을까? 이웃의 불행과 고통에 메마른 감정과 야박한 태도를 보인 게 얼마나 나쁜지를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타인의 불행을 나날이 일어나는 흔한 사건으로 소비하고 냉담한 채 흘려보낸 것은 우리가 영악한 이기주의자라는 뜻이다. 먼 데의 불행은 내 책임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은 양심의 예민함을 잃고 나태에 빠진 자의 그릇된 확신일 뿐이다.

자기 갈망에만 사로잡혀 이웃의 불행에 한 줌의 분노조차 없다면 그건 떳떳하지 못한 일이다. 그건 우리가 잘못 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당신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 당신이 슬프면 나도 슬프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다른 삶을 꾸리지만 우리는 상호연기(相互緣起)의 세계에서 연결된 채로 산다. 지금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면 그 까닭 없는 울음은 우리들 때문이 아닐까? 저 안데스산맥의 오지에서 지금 다리미질하는 페루의 소녀와 소매 긴 셔츠를 입고 장밋빛 황혼 아래 산책에 나선 나는 하나로 연결돼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밥과 찬술을 마시며 기뻐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 농사를 짓는 수고를 감당하고, 공들여 술을 빚은 덕분이라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이웃의 불행을 방관하지 말자. 단 한 사람이라도 길에서 얼어 죽는다면 그건 공동체 모두의 책임이어야 한다. 이건 내 책임이 아니야, 라고 고개를 내젓지는 말자. 만일 그랬다면 우리 양심이 무딘 거고, 윤리의식이 굳어서 작동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우리 안의 착한 천사가 죽으면 이런 일들이 더 자주 벌어진다. 우리 심장에서 어린 천사가 떠난 뒤 연민과 슬픔이 스밀 수 없게 딱딱해진 것은 우리의 씻을 수 없는 수치이고 치욕이어야 한다.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는 “네 아침을 준비할 때 다른 이들을 생각하라/비둘기의 모이를 잊지 마라”라고, “네 수도 요금을 낼 때 다른 이들을 생각하라/빗물 받아 먹고 사는 사람들을 잊지 마라”라고, “네 잠자리에 들어 별을 헤아릴 때 다른 이들을 생각하라/잠잘 곳이 없는 사람들을 잊지 마라”라고 쓴다. 시인은 거듭 ‘다른 이들을 생각하라’고 말한다. 다른 이들의 곤경과 불행에 온몸으로 공감하지 못한다면 그건 명백한 유죄이다. 왜냐하면 그건 우리가 거짓과 악에 물든 저 누추한 현실과 타협하고 연루되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일 테니까.

곧 추석이 돌아온다. 뜰 안의 대추나무 가지에 달린 대추 열매들은 고맙게도 붉고 둥글게 잘 익었다. 살아서 가을을 맞는 기쁨과 보람은 우리가 잘 살아서 그 공훈으로 주어진 게 아니다. 산 자들은 고향집에 모여 차례를 지내고 국과 밥을 나누고, 누군가는 불행의 중력에 짓눌리다가 불귀의 객이 되었다. 이들은 땅에 육신을 묻었거나 한 줌의 재로 변해 돌아올 수 없다. 우리 중 하나일 수도 있었던 다른 이들을 생각하라. 그들의 불행을 생각함이 마음의 공감각 속에서 분노로 바뀌고, 그 분노가 새싹같이 잘못된 현실을 뚫고 나와 나쁜 관행과 제도를 바꾸는 동력이 되기를 바라자. 아무리 작은 불행에도 관대해지지 말자. 불행을 쉬지 않고 제조하는 현실과는 결연히 맞서 싸우자. 우리 곁 누구에게도 불행이 깃들 여지조차 주지 말자.



장석주 시인
#불행#이웃의 불행#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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