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다 정독도서관에 닿았다. 나직한 반가움에 이끌리듯 그곳으로 들어갔다. 야트막한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고등학교 때 그곳에서 보낸 주말 추억이 오버랩 됐으니 추억도 한몫 한 셈이다. 이상하게 공부를 한 기억은 별로 없다.(실제로 공부는 안 한 것 같다) 친구들과 어울려 등나무 밑에서 도시락을 먹고 벤치를 등받이 삼아 고개를 끝까지 젖히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좋아라 한 순간도 되살아났다. 어느 날엔가 소설책을 읽으며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보던 날도 떠올랐다. 구체적인 건 하나도 기억 안 나고 그 계절의 온기와 풍경 같은 추상적인 것들만 아스라했다.
그렇게 들어간 도서관 정원에서 오랜만에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리셉션이 없다는 것은 때로 얼마나 편하고 좋은 것인지. 돈을 낼 필요도, 신용카드를 꺼낼 필요도, 왜 왔는지 말을 할 필요도 없이 그저 활짝 열린 문을 향해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영국에 본사가 있는 유명 매거진 ‘모노클’에서는 매년 살기 좋은 도시 리스트를 발표하는데 체크 리스트 항목에는 자전거 통근 편의성, 좋은 점심 식사 장소, 커피 한 잔 값, 생활비 등이 포함된다. 공공도서관도 주요 평가 항목 중 하나다.(정독도서관은 서울시립공공도서관으로 1977년 개관해 한결 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 한 도시에 공공도서관이 많지 않다는 건 돈이 없어도 환영 받는 곳이 많지 않다는 것과 같은 얘기. 알고 싶고, 성장하고 싶고, 쉬고 싶은 이들을 위한 둥지가 충분하지 않다는 의미도 된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