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가 경쟁력이다![동아광장/최인아]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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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일부 구간은 버텨야 하는 시간
세상의 씨앗들은 ‘그냥’ 자라지 않아
흙 물 바람 맞아야 싹 틔우고 꽃 피워
우리 안의 재능 꽃피우는 건 바로 태도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더 이상 김치를 담그지 않고 사 먹는 집이 많아졌지만 계절은 곧 김장철이다. 어릴 적 김장을 담그는 날이면 엄마는 돼지고기를 삶았고 우리들은 돼지고기 편육을 새우젓에 찍어 배춧속과 함께 먹곤 했다. 옛사람들은 왜 돼지고기와 새우젓을 같이 먹어야 하는지 과학적으로 설명하진 못했지만 그것이 몸에 좋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알았다.

언어도 그런 것 같다. 오래도록 회자되는 말들엔 인생의 지혜가 들어 있는데 그중에 이 말이 있다. 버티는 게 장땡이라는 말. 나도 버텼다. 인생의 몇몇 구간은 버티는 시간이었다. 요즘 친구들은 ‘존버’라 하던데 나는 무얼 버텼고 무얼 위해 그랬을까. 그 덕에 지금 내가 이 모습으로 있는 걸까. 물론 간절한 노력과 수고, 수많은 우연과 타이밍, 깊이 얽힌 인연들도 한몫했을 거다.

아, 하나를 더 꼽는다면, 내가 하는 일을 잘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겠다. 그 욕망이 강렬했으므로 도전하고 실패하며 분발할 수 있었다. 돈 많은 사람보다 잘하는 사람, 유능한 사람이 부러웠고, 후배들도 일 잘하는 친구, 맡은 일은 어떡하든 책임지고 해내는 친구들이 이뻤다. 하지만 사람이 항상 잘할 수는 없지 않은가. 실수도 하고 어려움에도 빠진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지만 책임을 져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는 곳’이 그 사람이 누구인지 말해주기도 하지만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가 그 사람에 대해 더 많은 걸 보여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무렵부터 내겐 ‘태도’라는 화두가 깊이 들어와 박혔고 사람들을 볼 때면 일을 대하는 태도를 눈여겨보곤 했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말이면 신입사원을 공채로 뽑았다. 비슷한 연령대의 비슷한 능력을 가진 것 같은 젊은이들을 한꺼번에 뽑았고 그들은 동기생이 되어 같은 출발선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비슷해 보이는 그들도 3년, 5년, 10년…. 시간이 흐르면 퍼포먼스에서 차이가 드러났다. 무엇이 차이를 만드는 걸까. 나는 이 점이 궁금했다. 태도와 퍼포먼스에 이어 재능에 대한 고민도 길었다. 지금은 ‘책방마님’으로 살고 있지만 학교를 졸업한 후 나의 첫 직업은 카피라이터였다. 나도 선배들처럼 쌈박한 아이디어를 내고 싶고 멋들어진 카피를 쓰고 싶었지만 처음부터 잘되진 않았다. 일을 잘하고 싶었던 젊은 나는 맨 먼저 나의 재능을 의심했고 좀 성급한 듯했지만 이런 결론을 냈다. 나는 재능이 없는 것 같아 라고…. 완전히 절망하기엔 너무 젊은 데다 딱히 대안도 없었으므로 나는 카피라이터로 계속 일하며 쉬지 않고 질문을 던지고 관찰하고 가설을 세우고 의심하고 부정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런 시간이 쌓이자 어느 날인가부터 나만의 문장들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의 씨앗들은 ‘그냥’ 자라지 않는다. 흙이 알맞아야 하고 햇빛을 보거나 적당한 그늘이 있어야 하며 물이 있어야 하고 바람도 통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씨앗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올린다. 재능도 그랬다. 필요한 재능 없이 그 일을 탁월한 수준으로 잘하기는 쉽지 않지만, 재능이 있다고 해서 다 능력을 펼치고 인정을 받는 것도 아니다.

무엇이 재능에 싹을 틔우고 꽃으로 피워내는 걸까? 사람들은 노력을 떠올리겠지만 나는 약간 각도를 틀어 ‘태도’를 말하고 싶다. 너무 일찍 좌절하거나 교만하지 않는 태도,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존버’ 하며 재능을 갈고 닦는 태도, 함께 일한 사람들이 다시 일하고 싶게 하는 태도, 그때그때의 유행에 한없이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아내고 집중하는 태도, 몇 번의 실패 속에서도 끝내 자신을 믿고 존중하는 태도! 재능은 이런 태도를 만나야 비로소 아름답게 꽃핀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동안 능력주의자였으나 마흔을 넘어선 뒤 태도주의자로 노선을 변경했다. 마흔 이후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를 절절히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사는 게 조금 편안해졌다. 재능과 달리 태도는 내가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으니까. 그리하여 나는 몇 해 전 이런 문장들에 도달했다. “씨앗 없이는 꽃이 피지 않지만 씨앗을 심었다고 모두 꽃을 피우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안의 재능을 꽃피우는 것이 바로 태도다”, “결국 태도가 경쟁력이다!” 같은. 어떤가. 조금 깊은 숨이 쉬어지지 않는가. 당신의 풍성한 가을을 응원한다.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태도#경쟁력#씨앗#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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