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용]‘뉴딜 낙하산’도 ‘개취’라는 청와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대통령이 국민과 성과공유 약속해놓고
비전문가에 20조 펀드 맡길 수 있나

박용 경제부장
박용 경제부장
‘대한민국 100년을 설계한다’는 20조 원 규모 뉴딜펀드를 금융투자 경험이 일천한 비전문가가 굴리겠다고 나선다면 말려야 정상 아닌가. 청와대에선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뉴딜펀드를 운용하는 한국성장금융의 투자운용2본부장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있을 때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을 지낸 인사가 내정됐다. 금융권에선 “금융투자 경험도, 자격증도 일천한 부적격 인사”라고 난린데, 정작 청와대는 “청와대가 관여하는 인사가 아니다”라며 강 건너 불구경이다. 한술 더 떠 “전직 청와대 직원이 개인적으로 취업을 한 사안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 낙하산, 이런 표현을 한 것은 유감”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게 개취(개인적 취업)의 문제인가. 뉴딜펀드를 뜬금없이 국민들 앞에 띄운 건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금융과 민간 자금이 참여하는 ‘뉴딜펀드’ 조성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두 달 뒤 정부는 문 대통령이 주재하는 ‘제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에서 ‘국민참여형 뉴딜펀드’ 조성 방안을 보고했다. 청와대가 관여하는 인사가 아니라고 해서 방관할 자리가 아니다.

뉴딜펀드에 국민을 끌어들인 것도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은 “막대한 유동자금이 한국판 뉴딜사업으로 모이고 수익을 함께 향유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정부는 일반 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사모재간접공모펀드를 만들고 국민참여펀드 조성도 추진하고 있다. 국민을 이해관계자로 끌어들였으니 누가 펀드를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 의문을 갖는 사람들에게 상세히 설명할 책임이 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당에서도 오래 일을 해서 전혀 (금융) 흐름을 모르는 분은 아니다”라고 논란의 당사자를 감쌌다. 당에서 오래 일하고 흐름을 이해한다고 해서 국내 최고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할 투자운용 업무를 맡길 수 있나. 김 총리는 “투자운용본부장이 1본부장, 2본부장이 있는데 그중 한 파트를 맡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원래 한국성장금융에 투자운용본부장은 1명이었다. 지난달 이 자리를 둘로 쪼개고 2본부장을 만들더니 16개 모(母)펀드 중 가장 덩치가 큰 뉴딜펀드 운용 업무를 갖다 놓고 공모 절차도 없이 본부장을 내정했다는 게 ‘위인설관 낙하산 인사’ 논란의 발단이다.

권력을 쥔 여당, 청와대 출신이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승자독식 세계관은 실력을 쌓기 위해 한 분야에서 수십 년간 일을 하고 자격증을 따느라 청춘을 보낸 전문가들의 땀과 노력을 배신하는 일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워야 할 한국의 실력주의(Meritocracy)가 뿌리부터 흔들린다.

한국성장금융이 투자하는 자(子)펀드는 200개가 넘고 투자 기업만 약 3000곳이다. 뉴딜펀드 투자운용 책임자는 7조 원의 정책자금이 투입된 모펀드를 굴리며 자펀드나 투자 기업에 막대한 영향을 발휘할 수 있다. 감시가 허술하면 옵티머스·라임과 같은 사모펀드 사태나 총리와 측근이 국영투자사를 통해 45억 달러를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는 말레이시아 ‘1MDB’ 사건과 같은 ‘약탈정치(Kleptocracy)’ 창구로 변질될 수도 있다. 그러니 투자운용 책임자는 공개 채용을 원칙으로 하고 주요 의사결정에 대한 감시는 강화해야 한다. 이 중요하고 복잡한 문제를 ‘전직 직원의 개취’라고 한 청와대의 ‘불공정 불감증’이야말로 유감천만이다.

박용 경제부장 parky@donga.com
#청와대#뉴딜 낙하산#개취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