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서영아]초고령사회의 상상력은 어디로 갈까

서영아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입력 2021-05-28 03:00수정 2021-05-2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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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 첫아이 낳고 노인은 안락사
NHK 드라마가 보여준 초고령사회의 단면
서영아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초고령사회 일본에서는 창작의 세계에서도 색다른 상상력이 발휘되는 듯하다. 4월 NHK가 방영한 ‘세븐티(70세) 초산’이란 3부작 드라마가 그랬다. 어느 금요일 저녁에 만난 일본인 주재원이 이걸 봐야 한다며 방송 시간에 맞춰 귀가를 서두르는 바람에 알게 됐다. 70세에 출산이라니, 처음엔 망측하게 느껴졌지만 드라마를 보다 보니 빠져든다. 실제 나이 68세인 아내 역의 배우를 보면 아주 불가능한 일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요즘 노인은 나이와 실물 차이가 워낙 크지 않던가.

같은 제목의 만화 시리즈가 원작인데, 2016년부터 현재까지 주인공 부부가 건강한 딸을 낳아 우여곡절을 겪으며 유치원에 보내기까지 키워내는 과정을 연재 중이다.

스토리는 만 65세를 꽉 채워 정년퇴직한 날, 에즈키가 집에 돌아오니 69세 아내 유코가 폭탄 발언을 하는 데서 시작한다. “나, 임신이래요.” “뭐라고? 벌써 노망이 왔나?” 하지만 사실이었다. 부부가 평생 염원했지만 포기했던 아이가 이제 찾아와준 것이다. 주변에서는 모두가 뜯어말리는데 아내는 낳겠다고 고집한다. 경악을 거듭해온 에즈키도 병원에서 초음파 영상에 비친 태아의 심장 박동을 느끼며 마음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엇인가가 솟아오른다. 이제 에즈키가 그렸던 안온한 노후 대신 신참 부모가 분투하는 출산 일기가 시작된다.

원작도 드라마도 노인 출산이라는 비현실적인 설정을 빼면 리얼하기 그지없다. 여기에 부부의 나이 때문에 한층 대조적으로 느껴지는 생명과 삶에 대한 경외감이나 감동도 각별하다. 은퇴의 허탈함을 압도하는 출산과 육아라는 어마어마한 ‘사건’은 세월과 더불어 바래져 갔을 소시민 부부에게 미래라는 찬란한 빛을 던져줬다. 그래서 딸의 이름은 ‘미라이(未來)’이고, 드라마는 가족 모두의 성장사이기도 하다. ‘함께 울고 웃는다’는 독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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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 초산’이 탄생을 다뤘다면 죽음을 다룬 드라마 쪽은 암울한 현실을 부각시켜 준다. 2015년 방영된 NHK 8부작 드라마 ‘하레쓰(破裂)’는 국가 주도의 안락사 음모를 소재로 해 높은 시청률을 보였다.

한 의사가 노화된 심장 기능을 되살리는 주사치료법을 개발했는데, 이 요법에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심장이 갑자기 파열되는 부작용이 있다는 데서 얘기는 시작된다. 초고령사회 일본의 미래를 우려하던 천재 관료가 이 부작용을 이용해 음모를 꾸민다. 주사를 맞은 노인들이 수개월간 정정하다가 돌연사로 사망한다면 막대한 의료 재정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계산한 것이다. 국가는 이 치료법에 ‘프로젝트 천수(天壽)’라는 이름을 붙여 노인 대상 시술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노인들은 한동안 건강을 되찾지만 하나둘 심장 파열로 쓰러져 갔다. 질병을 앓던 노인들도 점차 이런 결말을 알게 되지만 그래도 시술을 택한다. 결국 경찰에 체포되는 이 관료는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무위무책(無爲無策)으로 있으면 이 나라는 망한다”고 절규한다. 현역 의사인 구사카베 요(久坂部羊)가 2004년 펴낸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일본은 그 이듬해 초고령사회(인구 20%가 고령자)로 진입했다. 한국도 2025년이면 초고령사회에 들어서니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을 듯하다. 70세 출산의 생명과 성장이 주는 감동도, 국가 주도 안락사가 등장할 만큼 암울한 현실 인식도, 우리 앞에 다가온 초고령사회가 보여주는 ‘비현실적이지만 리얼한’ 미래가 아닐까.

서영아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sya@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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