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을 추모할 수 없는 영화계[현장에서/김재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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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 동아일보DB
2012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 동아일보DB
김재희 문화부 기자
김재희 문화부 기자
“(영화계에서) 그의 죽음에 대한 애도가 금기시되는 분위기라 말을 하기 어렵다.”

고 김기덕 감독의 데뷔작 ‘악어’부터 그의 여러 작품에 대해 평론했던 한 영화평론가의 말이다. 그와 인연이 있는 한 영화사 대표는 “따로 밝힐 입장은 없다”고 했고, 그와 친분이 있던 한 평론가 역시 “그 사람을 놓은 지 오래”라며 말을 아꼈다. 한국영화감독조합과 프로듀서조합, 한국영화제작가협회도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사실상 그에 대한 추모를 거부한 셈이다.

고인의 업적에 대해 반박의 여지는 없다. 그는 한국 감독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인 칸, 베를린, 베니스 영화제에서 모두 본상을 수상했다. 2004년 ‘사마리아’로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감독상)을, ‘빈집’으로 베니스 영화제 은사자상(감독상)을, 2011년 ‘아리랑’으로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상을 받았다. 2012년 ‘피에타’로 한국 감독 최초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그의 영화는 인간의 욕망을 날것 그대로 드러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정성일 영화평론가는 ‘김기덕, 야생 혹은 속죄양’이라는 평전을 냈다. 하지만 지나친 폭력성, 특히 여성에 대한 성폭력과 그에 순응하는 여성 캐릭터를 자주 등장시켜 시대착오적이고 가학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에 대한 시선이 호불호를 넘어 옳고 그름의 영역으로 넘어오게 된 계기는 2017년 ‘뫼비우스’에 참여했던 여배우 A 씨의 고백이었다. 김 감독에게 뺨을 맞고, 대본에 없던 베드신 촬영을 현장에서 요구받았다는 폭로였다. 2018년 ‘#미투’ 운동으로 다수의 여성 스태프, 배우들이 그에게 성희롱, 성폭행을 당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도 “범죄의 결과물을 옹호할 순 없다”며 등을 돌렸다. A 씨에 대한 성폭력 혐의는 증거불충분으로 기각됐지만 법원은 그의 폭행 혐의에 대해 5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그에 대한 추모가 금기시되는 것도 결과물보다 과정의 문제 때문이다. 특히 그 문제가 범죄의 영역을 넘나든다면 결과물에 대한 찬사도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 황제’로 아카데미 작품상 등 9개 부문을 휩쓴 이탈리아 거장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도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촬영 과정에서 “성폭행 장면은 사전 합의 없이 이뤄졌다”는 여배우 마리아 슈나이더의 폭로로 2016년 비판의 한가운데 섰다.

‘인격과 작품은 별개인가’에 대한 갑론을박은 늘 있다. 하지만 문제가 범죄로까지 나아갔을 때는 작품과 별개가 될 수 없다. 김 감독은 생전 “제 영화가 폭력적이라도 제 삶은 그렇지 않다”고 밝혔다. 그의 말처럼 대중은 물론 영화계가 수용할 수 있는 수준도 거기까지다. 폭력적인 영화는 인내할 수 있지만 폭력적 인격을 인내해 주는 시대는 지났기 때문이다.

김재희 문화부 기자 jetti@donga.com

정정보도문

본보는 2018. 6. 3. <김기덕 감독, 자신을 고소한 여배우 무고죄로 맞고소> 제목의 기사 등에서 ‘영화 뫼비우스에서 중도하차한 여배우가 베드신 촬영을 강요당하였다는 이유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하였다’는 취지로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위 여배우는 김기덕이 베드신 촬영을 강요하였다는 이유로 고소한 사실이 없으므로 이를 바로 잡습니다.


#김기덕#추모#영화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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