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와 ‘격노’에서 찾는 트럼프 리스크 대처법[광화문에서/이정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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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워싱턴특파원
이정은 워싱턴특파원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의 신작 ‘격노(Rage)’의 공식 출간을 앞두고 ‘공포(Fear)’를 다시 읽었다. 2년 전 그가 내놨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첫 책이다.

책에 담긴 한국 관련 내용들은 다시 봐도 우리가 격노할 만한 내용들이 가득하다. 프롤로그부터 등장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파기 시도 에피소드부터 반복되는 무역적자 불평과 주한미군 철수 으름장까지…. 2017년 ‘화염과 분노’ 시기 트럼프 대통령이 핵단추 운운하면서 “주한미군 가족 전원에게 철수 명령을 내리는 트윗을 날려볼까”라고 제안하는 장면도 있다.

후속작인 ‘격노’에 담긴 내용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호구냐”며 주한미군 주둔 비용에 대한 불만을 반복적으로 쏟아냈다. 실제 주한미군을 빼내라고 명령한 적이 있다는 부분에 이르면 맥이 탁 풀린다. “한국은 우리 때문에 존재하는 나라”라는 주장은 모욕적이다. 하긴, 몰랐던 내용도 아니다. 그가 한국, 동맹, 해외 주둔 미군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지는 이미 수없는 언론 보도와 옛 측근들의 폭로전을 통해 익히 알려져 있다. 공감력 부족, 변덕, 책임 회피 같은 문제점도 수없이 들었다. 아첨으로 도배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들, 과시용 이벤트로 전락한 3차례의 북-미 정상 회동의 적나라한 뒷이야기 정도가 우리에겐 그나마 새로울까.

핵심은 우리가 이런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응할 충분한 준비를 해왔느냐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재선 시 더 거세고 집요해질 방위비 분담금 증액, 주한미군 감축 압박, 노골적인 반중(反中) 정책 동참 요구가 한국을 뒤흔들 것이다. 다행히 책에는 이런 ‘트럼프 리스크’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포인트들도 함께 녹아 있다.

그의 독단적인 결정을 만류하려고 애쓰는 참모들이 우선 눈에 띈다. 특히 군 장성들은 “쫄보(pussies)”라고 불리는 굴욕을 감수하면서까지 ‘돈보다 중요한 동맹’을 주장했다. 이런 ‘미스터(Mr.) 쓴소리’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한국의 입장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려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철저한 비즈니스맨이라는 것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의 발언에는 돈, 비용, 거래, 손해 같은 단어들이 반복된다. 이런 상대에게는 그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해 확실한 주고받기에 나서는 게 효과적이다. 방위비 분담금 같은 돈의 규모를 따지라는 게 아니다. 미국이 필요로 하는 부분, 예를 들면 인도태평양 전략 지원이나 한미일 3국 협력 등에서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주는 건 어떨까.

미중 사이에서의 어정쩡한 눈치 보기를 넘어서는 전략적 선택도 지금보다는 과감해져야 한다. 국무부 내에서 “한국이 미국에 해주는 게 없다”는 불만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을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한 당국자는 중국의 인권 침해, 5세대(5G) 통신 보안 우려, 남중국해 위협 등을 거론하며 “미국이 힘을 보태달라고 할 때 한국은 어디에 있었느냐”고 묻기도 했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는 것이 미국에 맞선 협상의 기술이자 원만한 한미동맹을 유지하는 근간이다.

이정은 워싱턴특파원 lightee@donga.com


#밥 우드워드#워싱턴포스트#격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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