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의 설득과 윤석열의 설득[동아광장/박상준]

  • 동아일보

尹 “국민 공감과 보편적 정당성”
秋 “검찰개혁 위한 소통과 경청”
경청과 공감만이 설득의 正道… 국민 움직여야 개혁 정당성 얻어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일본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일본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내가 처음 교편을 잡은 일본의 대학은 한국의 전경련과 유사한 경단련이란 단체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대학원대로 학생 대부분이 일본 기업 사원이거나 국제기구의 지원을 받는 외국인 유학생이었다. 일본에 있는 대학이지만 일본 학생의 비중이 30%에 불과했다. 일본인 인재들이 세계 각국의 인재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장을 만들겠다는 것이 설립 취지였기 때문에 나는 미국 유학 중에도 본 적이 없는 나라의 학생들, 팔레스타인, 키르기스스탄, 코트디부아르, 부탄 등에서 온 학생들을 거기서 처음으로 만났다.

매년 가을에는 대학축제가 성대하게 열렸는데 축제 기간에는 그 대학에 재학 중인 모든 학생의 국기가 캠퍼스에 게양되었다. 2000년대 초반 어느 해, 대학축제를 몇 주 앞두고 중국인 학생들이 대만 국기가 게양되는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대만은 국가가 아니고 중국의 일부이기 때문에 국기를 게양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대만 학생은 서너 명에 불과했지만 국기를 포기할 수 없다며 완강히 맞섰다. 중국 학생들은 ‘하나의 중국’을 호소하는 한편 대만 국기가 게양된다면 축제를 보이콧하겠다고 으름장을 놨지만, 다양한 국적의 캠퍼스 여론은 대만의 입장을 지지했고 대학당국은 대만 국기를 게양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일련의 소동이 끝난 뒤에 중국계 캐나다 학생이 대학신문에 기고한 글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부모가 중국 대만 홍콩의 삶을 모두 경험했다는 그 학생은 하나의 중국은 위력이 아니라 ‘설득’으로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대만이 왜 중국의 일부가 되기를 거부하는지 이해하고, 대만이 합류하기 원하는 중국을 만들어 나갈 때 비로소 하나의 중국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 주장의 요지였다.

지난 1년간 홍콩의 반중(反中) 시위와 그 시위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여론, 한국 대학 캠퍼스에서 있었던 중국 학생들과 한국 학생들의 충돌, 미중 무역전쟁과 중국의 고립 등을 볼 때마다, 그 캐나다 학생의 글이 생각났다. 20년 전 중국 학생들이 캠퍼스의 동료들을 설득하지 못했던 것처럼 중국은 여전히 홍콩도 대만도 국제사회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이달 3일 신임검사 신고식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은 ‘검사가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설득’이라고 했다. 그의 연설문을 보고 뜻밖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반가웠다. 윤 총장은 ‘국민을 설득하여 공감과 보편적 정당성을 얻어야 한다’고 했지만 과거의 검찰은 강압수사와 권위주의, 정치 편향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무엇보다도 검찰 내부의 범죄를 묵인하고 방조함으로써 국민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검찰개혁이 많은 국민의 지지를 얻은 배경이기도 하다.

신임검사 신고식 7개월 전인 올해 1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장관 취임사에서 검찰개혁을 여덟 번이나 언급하며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와 지지는 역대 최고조에 달해” 있으며 그 자신부터 “성공적인 검찰개혁을 위해 소통하고 경청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최근 MBC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 검찰 인사 등 최근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검찰개혁 방향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긍정적 평가보다 10%포인트나 높게 나왔다고 한다.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역대 최고조에 달해 있다는 주장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윤 총장은 ‘검찰주의자’라는 평가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변함없이 일관된 입장을 견지함으로써 ‘공감과 보편적 정당성’을 얻어가고 있는 반면, 추 장관은 ‘소통하고 경청’하는 대신 정권에 편향된 인사와 수사지휘를 일방적으로 남용하여 검찰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검찰개혁도, 민감한 사건에 대한 수사와 재판도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에 누가 결국 국민을 설득하는 데 성공할지 아직 예단할 수 없다. 설득은 내가 지향하는 가치를 상대에게 알리고, 상대의 의견을 경청함으로써 나를 돌아보고, 상대가 내 주장에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과정이다. 그 노력 여하에 따라 둘 다 설득에 성공할 수도, 둘 다 실패할 수도, 성공과 실패가 갈릴 수도 있을 것이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일본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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