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자가 의원 휴대전화를 엿보는 이유[사진기자의 ‘사談진談’]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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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책보좌관에게 검찰 징계 법령 파악을 지시하고 있다. 뉴스1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책보좌관에게 검찰 징계 법령 파악을 지시하고 있다. 뉴스1
변영욱 사진부 차장
변영욱 사진부 차장
국회의원이나 유명인의 휴대전화 속 정보를 캐는 것을 즐겨 하는 사람들이 있다. 불법 행위를 밝혀 처벌하려는 검찰이 그렇고 불법으로라도 정보를 얻어 이익을 취하려는 해커도 있다. 또 한 부류가 사진기자들이 아닐까 싶다. 사진기자들은 국회 회의장에서 의원들이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면 카메라 앵글을 그쪽으로 고정시킨다.

본회의장의 경우 국회의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사진기자석 바로 아래쪽에 있는 의자에는 중진 의원들이 앉는다. 그래서 보통 중진 의원들의 휴대전화가 사진기자들의 타깃이 된다.

그렇다고 초선들이 안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포처럼 큰 망원렌즈로 무장한 사진기자는 수십 m 떨어져 있는 휴대전화 화면을 엿볼 수 있다. 상대방이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생활을 훔쳐보는 듯해 공정하지 않은 취재 방식이라는 비판이 많다. 가끔 “남의 문자 찍냐”는 힐난에 부끄러울 때도 있지만 사진기자들의 훔쳐보기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사진기자들이 정치인의 휴대전화에 관심을 갖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첫째는 아주 실무적인 이유고, 둘째는 좀 더 거창한 이유다. 실무 차원에서 볼 때 카메라가 포착하는 휴대전화 화면 한 컷이나 수첩의 몇 단어는 신문 제작에 도움이 된다. 취재기자들은 취재원이 던지는 말 한마디로 원고지 수십 장의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다. 키워드로 맥락을 이어붙이는 기술을 갖고 있는 정치부와 사회부 민완 기자들에게 사진기자들이 포착한 사진은 엄청난 요리 재료가 된다. 수첩에 적으면 필기체를 못 알아볼 수도 있고 혼자 쓴 의미 없는 글이라고 해명할 수도 있지만 스마트폰은 상대방이 있어서 맥락을 부정하기 어렵다.

실제로 작년 11월 민영통신사 뉴스1의 사진기자는 국회의 한 회의장에서 공동경비구역(JSA) 대대장이 대통령비서실 관계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촬영했다. ‘북한 주민 2명을 추방해 다시 북한으로 돌려보냈다’는 비밀을 세상에 폭로하는 기사가 만들어졌고 이틀간 국회에서 야당이 정부와 청와대를 공격하는 회의로 이어졌다.

지난달 18일 본회의장에선 친문 인사인 박광온 최고위원이 누군가로부터 받은 ‘인재 영입부터 실수였다. 독선과 오만함이 부른 일련의 참사가 계속되고 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는 모습이 찍혔다.

다음 날에는 야당 이혜훈 의원이 자신의 휴대전화에서 유승민 의원이 보낸 ‘김형오 갈수록 이상해져’라는 문자를 보는 장면이 포착돼 총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공천 과정에 잡음이 일고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관음증이라고 욕을 먹기도 하지만 신문 제작진에게 이런 종류의 단독 사진은 아주 유용하다. 그래서 혹시 사진을 못 찍으면 타사가 찍은 사진을 얻어 신문에 ‘제공’ 사진으로 쓴다. 옛날 개념으로는 ‘물’ 먹은 셈이지만 그렇다고 현장 기자에게 페널티를 주지는 않는다.

사진을 위해 다시 포즈를 취해달라고 하면 가장 협조를 많이 해주는 직업군이 정치인이지만 정치인들에게 휴대전화 화면을 다시 보여 달라고 할 수는 없다. 이 불가역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아예 처음부터 인물에는 관심 없고 의원들의 휴대전화 화면만을 노리는 카메라 기자도 등장하고 있다.

사진기자들이 휴대전화 화면 사진을 좋아하는 두 번째 이유는 신문 제작자 쪽보다는 뉴스 인물들 때문이다. 흔히 사진은 진실만을 말한다고 한다. 그랬으면 좋겠다. 정치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정치인들이 카메라 앞에서 하는 행동은 이제 계산되었다고 보는 게 상식이다. 정치인의 말만 곱씹어서 들어야 하는 게 아니라 정치인이 찍힌 사진도 잘 살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쇼’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고 자아표현과 이미지 관리라는 개념도 쓰인다.

의원들의 휴대전화 문자가 기자와 독자들에게 인기가 있게 된 것은 정치 또는 정치 사진이 지나치게 보여주기 일변도로 나아간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하는 말과 계파 안에서 합의된 말이 다르다는 학습 효과 때문일까. 정치 현장을 뛰어다니며 역사를 기록해온 사진기자들도 이제는 카메라 앞쪽에서 벌어지는 연출된 악수보다 휴대전화 화면이 정치의 본질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의도적으로 자신의 휴대전화와 메모를 노출시키는 정치인이 있고 그런 사실을 모른 척 결과적으로 그를 도와주는 기자도 있다. 카메라 앞에서 다들 영민해지는 세태다. 정치인의 이미지를 대중에게 전하는 사진기자에게 세상은 오늘도 살얼음판이다.
 
변영욱 사진부 차장 cut@donga.com
#정치인#휴대전화#사진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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