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광현]경제, 숫자로 장난치지 마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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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논설위원
김광현 논설위원
3월 주주총회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기업의 해당 부서는 주주들에게 설명할 자료를 만드느라 한창 바쁠 때다. 실적이 좋지 못한 기업은 쏟아질 비난의 화살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피해 나갈까 골머리를 앓는다. 대표적인 ‘실적 마사지’ 방법 중 하나가 누적매출 보고다. 10년간 매년 1만 개씩 팔던 물건을 작년에는 1000개밖에 못 팔았다면 매출이 90% 줄었다고 말하는 대신 “누적 판매량이 재작년까지 10만 개였는데 작년에는 10만1000개가 됐다”고 발표하는 것이다. 실제로 2013년 아이폰 판매가 급감하자 애플의 최고경영자 팀 쿡이 투자자들에게 여러 번 써먹은 수법이다.

이처럼 거짓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실이라고도 보기 어려운 게 경제 통계의 양면성이다. 특히 정치인이나 정책 담당자들이 이런 숫자놀음에 능하다. 최근 김수현 대통령정책실장은 지난해 성장률(2.7%)과 관련해 “고무적이다. 경기 회복 자신감이 있다”고 자평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도 지난해 민간소비 증가율(2.8%)이 경제성장률을 웃돈 것을 두고 “민간소비를 중심으로 성장하는, 체질이 강한 경제로 변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심지어는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경제가 좋다는 말까지 나왔다.

청와대나 여당의 핵심 인사가 자신감과 의욕을 갖는 것은 좋다. 하지만 누적매출 보고식의 사기진작용에서 그쳐야 한다. 정말 우리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국민들을 바보로 아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아심이 들 게 할 수준이라면 곤란하다.

경기 분석에 대한 전문성을 갖고 있으면서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해 온 국책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경기 진단은 좀 다른 것 같다. KDI는 12일 발표한 ‘2월 경제동향’에서 4개월 연속 경기가 둔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동안 ‘다소 둔화→점진적 둔화→둔화 추세 지속’ 등으로 매달 경기 부진에 대한 표현 강도를 높여왔다. 생산·내수·수출·투자 등 경기를 떠받치는 핵심 지표에 대해 모두 부정적 진단을 내놨다. 민간소비와 관련해선 “소매판매액이 낮은 증가율을 기록하는 등 민간소비 증가세가 다소 미약하다”고 분석했다.

작년 고용 상황에 대해서도 ‘같은 숫자, 다른 해석’이 존재한다.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근로소득이 늘어난 데다 상용 근로자가 증가해 일자리 질도 좋아졌다’는 게 정부 스스로가 내린 작년도 일자리 부문에 대한 대체적 평가다. 숫자만 놓고 볼 때 틀린 게 없다. 하지만 근로소득이 늘어난 대신 자영업자가 줄고 실업자가 많아져 상·하위 20% 계층 간 소득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것도 사실이다.

고용의 질을 가늠하는 주요한 척도인 상용 근로자가 34만 명 늘었다. 그 대신 19만5000명의 임시 일용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월급을 더 받게 된 것과 일자리를 잃은 것을 두고 고용의 양은 나빠졌지만 질적으로 좋아졌으니 다행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경제는 심리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지나친 비관론을 경계하는 차원에서 정치인이나 정책담당자의 발언들이 나왔다고 믿고 싶다. 어차피 사회 인문적 현상에서 ‘지구는 둥글다’처럼 100% 객관적 사실을 말하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하지만 숫자를 자기 입맛에 맞게 오도하는 데도 정도가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진단이 정책적 오류로 이어지지 않을까 그게 걱정일 뿐이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주주총회#oecd#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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