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위슬랏의 한국 블로그]휘모리장단에 맞출까? 중모리에 맞출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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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 법무법인 충정 이사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 법무법인 충정 이사
법무법인에서 일하면 많은 내외국인 기업인을 만난다. 역사가 오래된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고 이제 막 설립된 회사에서 의욕적으로 활동하는 기업인도 있다. 이들의 공통된 불만은 바로 정부 규제다. 한목소리로 보다 명확하고 이해하기 쉬운 규제를 원한다고 말한다. 이민과 세금, 세관 등과 관련된 규제는 기업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기업은 정부의 규제를 이해한다. 모든 국가는 고유의 규제와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해외에 진출한 기업은 해당 국가의 규제에 순응하기 위해 반드시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가능하면 규제가 적기를 바란다. 자본주의의 속성이지 않은가? 자본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별다른 제재 없이 작동되길 원한다.

사실 규제 없는 시스템은 무정부 상태나 마찬가지다. 나는 완벽한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의 원칙을 고수하는 어떤 나라도 상상할 수 없다. 정부가 완벽하게 경제를 계획하고 통제하는 이념 또한 실패했다. 이런 이념을 표방하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어느 정도의 자유기업 제도를 허용한다. 어디를 가든지 자유와 규제가 혼합된 융합적인 시스템과 다양한 시장경제를 보게 된다. 시대에 따라 줄다리기를 하듯이 지속적으로 변한다.

한국에는 대한상공회의소가 있듯 외국 기업으로 구성된 주한 미국상공회의소와 주한 영국상공회의소, 주한 유럽상공회의소 등도 있다. 모두 회원사들이 쉽게 사업할 수 있도록 정책과 규제 변화를 바라며 지속적으로 정부와 소통한다.

해외에도 한국 기업들이 만든 상공회의소(예를 들어 재호 한국상공회의소 또는 미주한인상공회의소 총연합회)가 같은 역할을 하리라 믿는다. 그렇지 않으면 단지 사교 클럽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달 주한 유럽상공회의소가 연례 백서를 발표했다. 개요를 인용해 기관의 목적을 살피면 ‘한국의 전반적 규제 환경을 조망하는 동시에 국내 유럽 기업들이 선별한 산업별 특정 과제와 이에 대한 해결 전망을 한국 정부에 제시하는 것’이다. 올해 주한 유럽상공회의소가 한국 정부에 100개 이상의 사안을 권고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핵심만 얘기하고 싶다. 그것은 바로 ‘기업 환경 발전을 위해 일관성이 있고 예측이 가능하며 신뢰할 수 있는 투명한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제안은 ‘외국 기업’이 아니라 ‘일반적인 기업’의 환경 발전을 위해 하는 것이다. 정책과 규제가 보다 일관성을 가지고 예측이 가능하며 신뢰할 수 있고 투명하다면 한국에 있는 모든 기업에 이익이라는 뜻이다.

만일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 신뢰성, 투명성 등이 없다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까? 현재 한국에는 가상화폐를 정의하고 규제하는 법이 없다. 지난해 9월 정부는 가상화폐공개(ICO)를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계속 가상화폐의 토대인 블록체인을 제4차 산업혁명의 일환으로 인식하고 한국을 블록체인 허브로 만들겠다고 외친다. 어떤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은 정부 정책이 하도 일관성이 없고 예측 불가능하며 신뢰할 수 없고 불투명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나라에 활동 기지를 두고 만다.

일관성 등 4가지 사업 환경 규칙은 모든 기업인의 이익에 해당된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면 사업 이전부터 관련 정책과 법규를 알아보고 준수해야 한다. 하지만 정책이 자꾸 바뀌거나 담당 공무원마다 규제 적용이 다르며 아예 관련법이 없다면 이를 준수하기는커녕 시작조차 못 한다. 이런 상황에서 혼란이 세상을 지배하면 뇌물수수와 알선수뢰, 부정청탁이 일상적인 일이 될 수 있다.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 신뢰성, 투명성이 모든 정부 부처의 ‘만트라(진리의 말)’가 됐으면 한다.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 법무법인 충정 이사
#정부 규제#상공회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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