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광현]‘김&장 시즌2’ 안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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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논설위원
김광현 논설위원
한고조 유방(劉邦)은 항우(項羽)와의 쟁패 끝에 황제가 된 뒤에도 걸핏하면 전쟁터 의리를 앞세우고 바른말을 하는 유생(儒生)들의 관을 벗겨 오줌을 누곤 했다. 이를 보다 못한 신하 육가(陸賈)가 “말 위에서 천하를 잡을 수는 있지만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습니다.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후에 인의(仁義)를 행했다면 폐하께서 어찌 나라를 얻을 수 있었겠습니까”라고 충고했다. 한나라가 그 뒤로도 400년을 더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 다음 장면 때문이다. 유방은 얼른 낯빛을 바꾸어 나라를 잘 다스릴 방도를 지어 올리라고 했다. 사기(史記) ‘역생·육가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창업의 논리와 수성의 논리가 다르다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현대에는 정치·사회 분야보다 경제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의 퇴임이 기정사실화된 듯하다. 차기 경제부총리로는 홍남기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장이 많이 거론된다. 홍 실장은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주로 예산실에 있었고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근무 경력도 있는 무난한 경제 관료라는 게 중평이다. 사실 경제부총리는 아주 함량 미달 인사가 아닌 다음에는 누구든 크게 중요하지 않다.

어떤 부총리는 과장, 국장 시절에는 동료들에게 밀려 한직으로 돌다가 정권이 바뀐 다음 정권 실세의 추천으로 부총리로 돌아온 뒤 대통령의 강력한 신임 아래 역대 최고의 부총리란 말을 들을 정도로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지난해 서울대 행정대학원 국가리더십연구센터에서 역대 경제부총리 11명의 심층 인터뷰를 정리해 발간한 ‘경제부총리의 역할 재조명’ 보고서를 보면 부총리 성공 조건이 “대통령 신임이 60이라면 부총리 개인의 업무능력은 30, 예산권은 10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차기 후임 인사의 포인트는 대통령정책실장이다. 차기 정책실장으로 김수현 대통령사회수석비서관도 후보 가운데 한 명으로 거론되고 있다. 대통령과 코드가 맞고 신임이 각별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김 수석은 젊어서 판잣집 철거 반대운동을 하는 등 사회 불평등 해소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격적인 경제정책의 경험은 서울 집값 잡으려는 것 외에는 별로 없다. 다시 말하면 김 수석은 경제전문가라기보다 사회운동가에 가깝다. 정책실장의 업무 대부분이 성장 고용 통상 금융 등 경제 문제다. 산적한 경제 난제들을 경제 논리보다 사회·정치 논리로 접근하겠다고 작정하지 않은 다음에는 생각하기 힘든 인사로 보인다.

경제 투 톱의 조합 역시 중요하다. 현대 경제학에서 가장 큰 두 흐름을 대표하는 경제학자는 시장의 역할을 중시하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다. 그렇다고 해도 대통령정책실장에 케인스, 경제부총리에 하이에크가 앉아 있다면 나라 경제가 잘 굴러갈 리가 없다. 과한 비유인 듯하지만 김&장 조합에 그런 측면이 있었다. 물론 잘못된 한 방향으로 가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견제와 균형이 중요한 사회·정치적 사안과 달리 경제는 일관된 신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지금 한국경제가 처한 사정이 경제 수장들이 의견 충돌로 마찰을 빚고 있을 만큼 한가롭지가 않다.

미국이나 유럽 각국의 선거에서도 자주 목격하듯이 정권을 잡는 과정에서 경제적 약자들의 분노를 자극하고 희망찬 미래를 보장하는 구호를 얼마든지 내세울 수 있다. 그러나 집권 후 그걸 실천할 수 있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이제 문재인 정부도 1년 반이 됐다. 이제는 불확실한 경제실험은 접고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진짜 프로들로 경제팀을 꾸리기 바란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김동연#장하성#경제부총리#청와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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