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최지훈]고정관념을 깨야 한다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최지훈 호호스프 대표
최지훈 호호스프 대표
“오늘 누구 생일입니까?”

동그란 눈을 끔뻑이며 후배가 물었다. “밥이 팥밥이길래요. 생일엔 원래 팥밥이잖아요.” 순간 멍해졌다. 고정관념이 깨질 때마다 느끼는 기분이다. 바닥이 꺼지는 듯 아득해지는 기분. “생일엔 흰 쌀밥에 미역국 먹지 않아?” “에이, 팥밥에 미역국이죠.”

답이 있을 것 같지 않은 문제라 혼자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 머릿속 생일상은 고봉으로 담은 하얀 쌀밥에, 소고기가 풍족한 미역국인데 팥밥이라니. 하긴, 다들 생일날 미역국에 어떤 밥을 지어 먹는지 내가 알 도리는 없었다. 고정관념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신경 쓰고 살지만 이렇듯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벽을 느낄 때가 더 많다.

‘팥밥’처럼 내 안의 고정관념이 깨져 가는 경험은 언제나 경쾌하고 좋다. 눈치채지 못했던 편협한 시각을 털어낼 때의 개운함은 스트레칭과 비슷하다. 대상의 경중을 벗어나 그 이미지가 고착화되는 것을 나는 유난히 싫어한다. 고정관념을 멀리하려는 성격은 가족 분위기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부모님은 각각 다른 지역 출신이었다.

고향이 다른 ‘토박이’들의 다툼은 식탁에서 유독 잦았다. 두 분의 편견이 하나둘 깨져 가는 과정이 곧 내 성장 과정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김치칼국수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설탕물 국수’를 보고 경악했다. 부모님과 살며 나는 김치칼국수도, 설탕물 국수도 그러려니 하게 됐다. 정답은 없었다.

식생활이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지, 난 사춘기 즈음부터 단정 짓는 말투가 싫었다. 우주가 쉼 없이 변하는데 그를 구성하는 작은 단위에 불과한 인간이 확신하고 결론짓는 게 과연 타당한가 하는 사춘기 소년다운 생각에 사로잡혔다. 기성세대에 대한 막연한 불만도 섞여 있었다. 권위를 내세워 틀린 의견을 우기고 있는 듯 보였다. 단정 짓는 그들과 달라지기 위해 내가 택한 길은 말끝에 ‘같아요’를 붙이는 것이었다. 대다수의 문장을 ‘같아요’로 끝내곤 했다. “지구는 둥근 것 같아요.” “이 수프는 맛있는 것 같아요.” 내 의견은 보잘것없으며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여지를 내비쳤다. 상대가 맞고 내가 틀렸을 때에 대비한 안전장치였으며 상대가 틀리고 내가 맞았을 때를 위한 예의였다.

그처럼 생각의 유연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던 나도 변하고 말았다. 언제인지 모르게 ‘같아요’는 머리에서 사라졌다. 항상 열린 자세로 생각하고 사는 일은 사실 무척 피곤했다. 더구나 고정관념대로 사는 게 틀린 삶도 아니었다. 오히려 매우 경제적이고 안정적이었다. 그래서 하나둘 받아들인 고정관념은 순식간에 불어나 편견으로 이어졌다. 손톱만 한 경험에 비추어 세상을 단정 짓고 있었다. 우주의 법칙이라도 깨달은 양 떠들어댔다. 나는 매사 단정 지어 말을 맺는, 어렸던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어른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굳어가는 내 모습을 문득 알아차렸다. 편견을 버리라는 세상의 목소리가 날 도왔다. 어릴 적 기억을 모두 잊진 않아 다행이었다. 몸에 붙은 고정관념을 떨치기 위해 발버둥 쳤다. 애쓰고 있으나 ‘팥밥’과 같은 생각지도 못한 고정관념에 툭툭 부딪히고 만다. 고정관념에서 자유롭기 위한 노력은 아마도 치아 스케일링 같은 건가 보다. 쌓이면 털어내고, 굳어지면 긁어내는 작업의 무한 반복인가. 며칠 전 일이다. 길가의 만두가게를 본 여자친구가 말했다.

“만두 맛있겠다. 곧 설이니 많이 빚자 그래야지.”

또, 아득한 기분이 든다.

“설에 만두를 빚어?”
 
최지훈 호호스프 대표
#고정관념#팥밥#이미지의 고착화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