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덕]권오현 사퇴가 던진 메시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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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덕 산업부 차장
김창덕 산업부 차장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의 갑작스러운 사퇴 발표에 재계가 깜짝 놀란 분위기다. 삼성전자 수뇌부의 꼭짓점에 있던 권 부회장이 물러난 것은 적체된 인사 물꼬를 터주려 했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부회장이 사내에 사퇴 공지를 한 시점이 삼성전자의 3분기 잠정실적 발표 직후라는 점에 주목한다. 본인의 의지든 조직의 선택이든 반도체에 지나치게 의존한 삼성전자에 새로운 충격을 주는 메시지였다는 해석이다. 권 부회장이 이끌어온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부품(DS) 부문은 석 달간 무려 10조 원의 영업이익을 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삼성전자 최대 실적 행진의 일등공신이다. 그런데도 권 부회장은 사퇴의 변에서 “회사가 다행히 최고 실적을 내고 있지만 과거의 투자 결실일 뿐 미래 성장동력은 찾을 엄두를 못 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의 사퇴가 도전과 혁신의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했다.

반도체는 지난해 말 ‘슈퍼 사이클(초호황)’ 얘기가 나오더니 올해 들어 완전히 흐름을 탔다. 삼성전자는 반도체만으로 2분기에 8조3000억 원의 이익을 냈다. 3분기 반도체 이익은 그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의 믿을 수 없는 실적 고공행진에 가려졌지만 SK하이닉스도 표정관리가 힘들 정도다. 상반기에만 5조5000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지난달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는 3분기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영업이익 총합을 50조5000억 원으로 추정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9조 원 추정)과 SK하이닉스(3조8000억 원 예상) 두 곳이 국내 상장사 영업이익의 4분의 1 이상이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산업 확대 등으로 반도체 수요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란 예상이 많다.

샴페인을 터뜨릴 법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반도체가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이라는 점이다. 지금은 가파른 오름세이더라도 수년 내 상승세가 꺾일 수 있다. 반도체 착시를 경제 회복의 신호탄으로 예단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라는 얘기다.

다른 산업들은 곳곳에 노란불이 켜져 있다. 경제 파급효과가 큰 자동차 산업이 대표적이다. 한국 자동차는 2000년대만 해도 북미 시장에서 파란을 일으켰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빅3’가 동반 추락한 데다 일본 도요타의 대량 리콜 사태 덕을 봤다. 그런 틈새전략은 최근 한계를 나타내고 있다. 미국보다 더 심혈을 기울인 중국 시장은 결실을 제대로 보기도 전에 삐걱거리고 있다. 한국GM은 노동생산성 저하에 발목이 잡혀 생산물량 지키기에 급급하다.

세계 1위를 지켜온 스마트폰, 디스플레이도 중국이 턱밑까지 쫓아왔다. 당장 2, 3년 뒤 중국이 역전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조선산업은 이미 선두에서 내려왔다. 차세대 먹을거리로 주목받던 2차전지 배터리 산업도 생각보다 성장이 더디다. 새로운 ‘스타 산업’이 출현하지 않은 상황에서 반도체마저 하향세로 접어들면 한국 경제는 기댈 곳이 없어진다.

제프리 이멀트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최고경영자(CEO) 겸 회장은 최근 경영전문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변혁(transformation)’을 주제로 한 글을 기고했다. 그는 “누구나 계획은 있다. 한 대 얻어맞기 전까지는”이라는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의 말을 인용했다. 이멀트 회장은 “힘들 때 변혁을 지속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방법은 그것뿐이다”라고 했다.

비단 한 기업, 한 산업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정부가 지금 전력을 쏟아부어야 할 일을 딱 하나 꼽으라면 두말 할 것 없이 ‘포스트 반도체 키우기’가 돼야 한다.
 
김창덕 산업부 차장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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