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시작한 2017 대학농구리그가 지난주 ‘영원한 맞수’ 고려대-연세대의 챔피언결정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승리 팀은 주장 허훈(22)이 맹활약한 연세대였다.
1, 2차전 평균 16.5점으로 양 팀 최다 점수를 올린 그는 이견 없이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리그 2연패에 성공한 연세대가 기쁨을 만끽할 때 이를 지켜보며 내년을 다짐한 선수가 있었다. 평균 15.0점으로 팀 최다 득점을 기록한 고려대 김진영(19)이다.
허훈은 설명이 필요 없는 ‘농구 대통령’ 허재 국가대표 감독(52)의 둘째 아들이다. 허 감독의 큰아들 허웅(24)도 농구를 한다. 프로농구 동부 소속으로 지금은 군 팀 상무에서 뛰고 있는데 최근 두 시즌 연속 올스타전 팬 투표 1위를 할 정도로 기량이 좋고 인기도 높다.
이제 1학년인 김진영은 김유택 전 중앙대 감독(54)의 아들이다. 김 전 감독은 1980, 90년대를 주름잡은 선수였다. 그가 나타나기 전까지 센터라는 포지션은 주로 골밑만 지키면 됐다. 김 전 감독은 달랐다. 당시로는 큰 키에 스피드도 갖췄고 두뇌 회전까지 빠른 ‘영리한 센터’였다. 김 전 감독과 그의 중앙대 후배 허 감독, 강동희 전 동부 감독의 이름 한 자씩을 딴 ‘허동택 트리오’는 지금도 한국 농구 역대 최강의 삼각 편대로 회자된다. 허 감독처럼 김 전 감독도 아들 두 명이 농구를 한다. 한국 최초로 미국대학농구 1부 리그에서 활약했던 최진수(28·오리온)의 친아버지가 김 전 감독이다.
두 아버지는 지난달 26일 챔피언결정전 1차전이 열린 고려대 화정체육관을 직접 찾았다. 대학농구 최고의 무대에서 펼쳐진 2세들의 대결을 ‘한국 농구의 레전드’ 두 아버지가 지켜보는 장면을 보며 ‘피는 속일 수 없다’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농구는 대를 이은 사례가 유독 많다. 한국농구연맹 김영기 총재, 한국여자농구연맹 양원준 사무총장 등 선수 출신 행정가는 물론 프로농구 챔피언 KGC의 김승기 감독 등 현역 지도자 가운데도 농구 집안이 수두룩하다. 어릴 때부터 접할 기회가 많은 것이 이유겠지만 체격 조건이 중요한 종목 특성상 2세들이 이런 면에서 일단 유리한 것도 그 배경이다.
아버지처럼 굵은 팔뚝과 넓은 어깨를 지닌 허훈은 저돌적으로 골밑을 파고들었다. 아버지처럼 크고 마른 체격의 김진영은 영리하게 몸싸움을 했다. 김 전 감독은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키 198cm에 몸무게 69kg이었다. 진영이는 지금 193cm에 63kg이다. 잘 먹고 웨이트트레이닝을 많이 하는데도 체중이 늘지 않는다. 나도 그래서 걱정이었는데 어쩔 수 없나 보다”라며 웃었다. 플레이만 봐도 누구 아들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유전자의 힘은 강력했다. 어디 농구뿐이랴. 올해 신인왕을 예약한 야구 이정후-이종범, 축구 차두리-차범근 부자(父子)도 스포츠 유전자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례들이다.
허훈이나 김진영이 농구로 아버지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아직까지는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부분이다. 아들이 못해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너무 대단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들이 그랬듯이, 허훈도 김진영도 연습 벌레로 통한다. 남다른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어도 스포츠 세계에서 살아남는 길은 노력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서일 것이다. 지역구와 재산을 물려받은 정치인 2세, 재벌 2세와는 다르다는 것도 물론 잘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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