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의 재발견]‘잊혀진 계절’이 아닙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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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조교수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조교수
●잊혀진 vs 잊힌

1980년대에 나온 ‘잊혀진 계절’이라는 대중가요가 있다. 이 노래의 제목에 등장하는 ‘잊혀진’이라는 말이 친숙하다. 하지만 맞춤법상 잘못된 표기다. ‘잊힌’으로 적어야 맞다. 여기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뉴스 기사에서조차 ‘잊혀진, 잊혀지고, 잊혀지지’와 같은 표기를 자주 보게 되니 말이다.

맞춤법은 우리의 말로부터 출발한다고 했다. ‘잊혀진’이 우리에게 더 익숙하다면 그것이 맞춤법으로 채택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일리 있는 문제 제기다. 그런데 더 살펴보아야 할 말의 규칙이 있다. 우리는 우리 안의 규칙을 활용해 말을 한다. 그 규칙을 확인해 보자. 먼저 ‘잊혀지다’라는 단어가 있을까. 없다면 이 말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단어를 뜯어보자.

‘잊혀지다’에서 ‘잊다’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다. 이 ‘잊-’에 ‘무엇인가를 기억하지 못하다’라는 의미가 들었다. 여기에 ‘-히-’가 붙었다. ‘잊다’와 ‘잊히다’는 어떻게 다른가. 여기에 우리의 규칙이 들어 있다. 우리는 ‘-히-’를 포함한 단어를 사용하여 무엇이 달라지게 하는 것일까. 비슷한 관계를 갖는 단어들을 떠올려 보자.

―먹다: 먹히다, 막다: 막히다, 긁다: 긁히다,

닫다: 닫히다, 묻다: 묻히다, 밟다: 밟히다

‘-히-’가 들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무엇이 달라지는가를 보자. 이 차이 역시 실제 문장으로 확인된다.

―호랑이가 쥐를 먹었다.: 쥐가 호랑이에게 먹혔다.

‘먹다’는 주어가 ‘먹는 행위’를 한다. 하지만 ‘먹히다’의 주어는 먹는 행위의 대상이 된다. 이렇게 다른 힘에 의해 당하는 일을 ‘피동’이라 한다. 어려운 말이 나왔다고 긴장하지 말자. ‘피동’의 ‘피(被)’는 ‘피해자’의 ‘피’와 같은 한자로 ‘당하다’의 의미를 갖는다. 단어 속의 ‘-히-’는 당한다는 의미를 추가한다는 말이다. ‘잊다’와 ‘잊히다’도 마찬가지다. ‘다른 힘에 의해 잊음을 당하는 것’이 ‘잊히다’의 의미인 것이다. 그렇다면 ‘잊혀지다’에서 마지막 ‘-어지다’는 뭘까? ‘-어지다’가 붙은 단어들을 보자.

―막히다=막아지다, 닫히다=닫아지다


‘-어지다’는 ‘-히-’와 같은 행동을 한다. ‘막다, 닫다’를 피동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를 ‘잊다’와 ‘잊히다’의 관계에 적용해 보자. ‘잊히다’는 이미 피동이다. 여기에 다시 피동의 의미인 ‘-어지다’를 더할 필요가 있는가. 그럴 이유가 없기에 ‘잊혀지다’가 잘못된 표기인 것이다.

여기서 질문이 두 개 정도 나와야 한다. 첫 번째는 ‘맞히다’ 안의 ‘히’(20회 참조)와 오늘 본 ‘먹히다’의 ‘-히-’의 관계다. 둘의 모양은 같지만, 의미는 다르다. ‘맞히다’의 ‘-히-’는 ‘∼게 하다’의 의미이니까. 뭔가 복잡해 보일 수 있다. 걱정할 일은 아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이 두 ‘-히-’가 갖는 규칙을 제대로 활용해 말하고 있으니까.

기대하는 두 번째 질문을 보자. ‘아름다워지다, 깨끗해지다, 없어지다’에 보이는 ‘-어지다’가 위의 ‘-어지다’와 같은 것인가. 멋진 질문이다. 이 멋진 질문에 대해 다른 지면에서 논의하려 한다.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조교수
#잊혀진 계절#잊힌 계절#맞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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