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구의 옛글에 비추다]주인님 나의 주인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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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우리 군(郡) 갈산촌(葛山村)의 송생(宋生)은 내 친구 아들인데 같은 군의 김씨 집안 딸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다. 김 씨가 아직 성년이 되기 전부터 개를 한 마리 길렀는데 시집올 때 그 개가 따라왔다. 김 씨가 친정 부모를 뵈러 갈 때마다 개는 따라가다가 중간쯤에서 돌아오고, 김 씨가 돌아올 때면 반드시 중간까지 나가서 맞이하여 돌아왔다. 평소 주인에게 충성을 바친 일 중에 특이한 것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김 씨가 병이 들었다. 개는 방문 앞을 떠나지 않았으며 마치 주인의 병세를 살피는 듯하였다. 병이 점점 깊어지자 개도 며칠째 밥을 먹지 않더니 마침내 김 씨가 죽자 개도 사람들을 따라 매우 슬피 울었다. 염습을 마쳤는데 개가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집안사람들이 종적을 찾으니 개는 집 아래 작은 담장에 겨우 목이 들어갈 만한 구멍을 파고는 거기에 목이 낀 채로 늘어져 죽어 있었다.

반려견을 키우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눈물나는 장면입니다. 김약련(金若鍊·1730∼1802) 선생의 ‘두암집(斗庵集)’에 수록된 ‘충구전(忠狗傳)’입니다. 죽음으로 주인을 따랐으니 ‘충성스러운 개’라는 명칭도 오히려 부족합니다. “사람은 혹 남의 녹을 받아먹으면서도 충성으로 보답하지 않으니 무엇 때문인가?(人或有食人之祿, 而不以忠報者, 何哉?)”라는 질문이 이어지는 게 당연합니다. 진정한 사랑, 의리가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나머지 이야기를 더 봅니다.

옛날에 일선(一善) 땅에 의로운 개가 있었는데 술에 취한 주인을 깨우다가 불에 타 죽었다. 낙동강 가에 개의 무덤이 있다. 근래에 개를 기르던 기목군(基木郡)의 어떤 여자가 계모에게 너무 미움을 받자 고모에게 의지하려고 길을 떠났다가 잘못해서 눈구덩이에 빠져 죽었다. 깊은 산속이라 맹수가 많았는데 개는 시체를 지키며 밤새도록 떠나지 않았다. 아침이 밝자 까마귀 떼가 시체를 보고 몰려들었다. 개는 이리저리 뛰면서 까마귀를 쫓았는데 동쪽에서 쫓으면 서쪽으로 모여들고 서쪽에서 쫓으면 동쪽으로 덤볐다. 개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있는 힘을 다해 시체를 보호하니 까마귀 떼는 끝내 감히 시체를 건드리지 못하였고 마침내 무사히 염습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늙은 여종이 개를 길렀는데 여종이 죽어 장사를 지내자 개는 낮이면 그 무덤을 지켰고 밤이면 집으로 돌아오기를 오래도록 그만두지 않았다.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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