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재현]‘SW교육, 수능 포함’ 사교육시장만 웃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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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
이재현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
정부는 최근 소프트웨어 교육 의무화 방안을 발표했다. 내년 중학교 신입생부터 시작해 초등학교는 2017년, 고등학교는 2018년부터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하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소프트웨어 과목을 대학입시에 포함시켜야 한다”며 한발 더 나갔다.

하지만 현재 국민 사이엔 공감과 찬성 대신 비판과 반대의 목소리가 더 큰 것 같다.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조차 소프트웨어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는 공감하지만 이런 교육 방안이 타당하고 실제 효과가 있을지 의문을 제시한다. 사교육시장만 키워 치킨집보다 컴퓨터학원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냉소적 반응도 나온다. 가뜩이나 사교육비에 허리가 휘는 서민들에게 더욱 부담만 지울 가능성이 크다.

필자는 초중고교 학생을 상대로 한 소프트웨어 교육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교육을 프로그래머 양성을 위한 프로그래밍 언어 교육 정도로 여기는 현 정부의 자세는 크게 잘못됐다고 본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소프트웨어 교육이 강조된 때가 있었다. 지금은 성인이 된 당시 어린 학생들은 교재에 나온 예제 프로그램을 베껴 간단한 컴퓨터 게임을 만들어보곤 했다. 이는 수학 답안지를 보고 베껴 써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한마디로 과거 정부의 소프트웨어 교육은 프로그래머 양성에만 주안점이 있었던 셈이다.

소프트웨어는 알고리즘이 핵심이다. 알고리즘이란 어떤 문제 해결을 위해 컴퓨터가 사용가능한 정확한 방법으로서 지식과 문제 해결 능력으로 구성된다. 소프트웨어는 단지 이런 알고리즘을 프로그래밍 언어로 전환한 것일 뿐이다.

예를 들어 검색 엔진에서 특정 키워드를 검색한다고 치자. 이때 검색된 웹 페이지는 중요도 순으로 제시된다. 구글 검색 서비스는 웹 페이지 각각에 중요도 점수를 부여하는 페이지랭크라는 알고리즘을 활용한다. 이는 그래프 이론이라는 수학을 적용한 것으로 프로그래밍 능력으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페이지의 중요도를 결정하는 수학적 지식과 이를 알고리즘으로 구현하는 논리적 문제 해결 능력이 동시에 필요하다.

구글은 뉴스 편집을 알고리즘에 맡긴다. 야후 네이버 다음 등 사람이 뉴스를 편집하는 업체와 크게 다르다. 구글의 뉴스 편집 알고리즘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프로그래밍 기술만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좋은 뉴스를 판별해내는 기준과 관련한 저널리즘 지식이다.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다. 누구를 친구로 추천할 것인가, 어떤 포스트를 인기글로 제시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는 대인관계에 대한 사회학적, 심리학적 지식과 이를 바탕으로 한 알고리즘 구현이 관건이다.

이런 소프트웨어 특성 때문에 외국에서는 이미 현대 사회를 ‘소프트웨어 사회’로 규정하고 소프트웨어에 대한 인문사회과학적 연구를 폭넓고 심도 있게 진행하고 있다. 이른바 ‘소프트웨어 연구’라 불리는 새로운 학문 분야가 부상하고 있다. 초점은 우리와 달리 소프트웨어에 구현된 알고리즘의 분석과 비판에 있다.

한마디로 우리는 프로그래머라는 기능인 양성에 국한하는 데 반해 외국은 다양한 소프트웨어 전문가 양성에 방점이 찍혀 있는 셈이다. 소프트웨어 교육에 ‘소프트웨어 문화’라 불릴 교과목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인력 양성은 필요하다. 그러나 어떤 능력을 교육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프로그래밍 언어만으로는 안 된다. 이는 수단일 뿐이다. 지식 상상력 통찰력을 알고리즘으로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계발해야 한다. 소프트웨어 교육을 프로그래밍 언어 교육 정도로 보는 한 이번 정책은 일자리 창출이나 B급 인력 양성 대책은 될지언정 우리 사회가 원하는 A급 인력 양성 정책은 될 수 없다.

이재현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
#소프트웨어 교육 의무화#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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