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유한태]취업률에 목맨 문화예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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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태 숙명여대 교수 태극박물관 건립위원장
유한태 숙명여대 교수 태극박물관 건립위원장
교육부가 대학 정원을 줄이라고 하니 납작 엎드린 대학들은 예체능 관련 학과부터 줄일 모양이다. 문화예술의 가치조차 모른 채 일단 엎드리고 보자는 대학들의 자세가 안쓰럽다. 그런데 애꿎게도 미술 음악 체육 등 예체능 관련 학과부터 희생양이 돼야 하는 관행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첫째, 문화예술을 가볍게 보는 어리석음이다. 예술문화의 기본 토양 위에 문화 융성도 있다. 얼마 전 소치 올림픽 개회식에서 보여준 러시아 문화예술의 거목들은 하나같이 러시아 문화의 뿌리였다.

둘째, 대학의 존재 가치를 ‘취업률’이라는 잣대로만 보는 편견이다. 대학은 말 그대로 ‘큰 배움터’이다. 밥벌이 수단으로서만 ‘취업’을 생각하는 짧은 식견은 문제다. 독일 작가 장 파울이 “예술은 인간에게 생존의 빵은 아니지만, 정신적 포도주다”라고 했듯 예술은 돈만 먹는 블랙홀이나 애물단지는 더더욱 아니다. 취업률에만 목을 매는 조급증에 휘둘려 이미 대세가 된 세속의 가치관 속에 인문교양의 균형추로서 문화예술은 삶의 쉼표를 찍는 여유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셋째, 예체능 분야와 심지어는 문학 분야까지도 ‘하나’로 보는 ‘문예 혼합’의 인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사실 ‘예체능’이란 용어도 적절하지는 않다.

넷째, 대학의 사활과 국가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차대한 백년대계 교육의 비전을 영리 추구가 목표인 컨설팅회사에 맡기는 점도 문제다. 과연 컨설팅회사의 사전조사나 그에 따른 분석과 대책이 특정 조직의 미래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피카소나 모차르트나 스티브 잡스 등을 길러낸 건 미래를 크게 멀리 내다보는 문화예술이란 토양이었다. 역사가 오랜 작은 조직이라도 기다릴 줄 아는 숙성의 미덕이 필요한 분야가 바로 문화예술이다.

최근 5년간 통폐합된 학과 가운데 상당수가 예체능 계열이었다는 최근 보도는 정원 감축의 희생양이 된 한국 대학의 딱한 현실이다. 당장 취업률이 낮다고 ‘없애야 할’ 학과로 가볍게 여기는 안목으론 한국 대학의 진정한 구조조정은 성공하기 어렵다.

문화예술이 미래에 밥 먹여 줄 정신적 토양이라는 ‘슬로 컬처(slow culture)’로의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선진국의 공통점은 대학들이 인문학을 비롯한 문화예술 관련 학과의 일시적인 트렌드나 유행에만 휘둘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술이 ‘개밥의 도토리’로 몰리는 ‘묻지 마’식 대학 구조조정이라면 진정한 ‘문화 융성’의 길은 멀어진다.

유한태 숙명여대 교수 태극박물관 건립위원장
#취업률#예체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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