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흔파 선생의 한 명랑소설에 이 시의 첫 연이 실려 있었다. ‘이게 다야? 별 싱거운 시도 다 있네’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내 감상이었다. 그런데 그 시구가 오래도록 머리에 남았다. ‘나의 사랑하는 이, 너는 말했다./나의 사랑하는 이, 나는 말했다.’ 짧고 쉽기도 했지만 뭔가 새콤달콤한 맛이 감돌았기 때문이리라. 제목도 지은이도 몰랐던, 내 어린 날의 사랑의 시여라.
사랑에 빠진 두 사람에게 ‘너를 사랑해’ ‘내가 더 사랑해’ 이런 말 외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좀더, 좀더” “이렇게, 이렇게” 연인 둘이 동시에 같은 말을 웅얼거린다. 보는 이가 수줍어지도록 숨 가쁘게 펼쳐지는 사랑의 정경을 시인은 간결하게, 그러나 선명하게 처리한다. 그런데 제목이 왜 애가일까? 그러고 보니 둘째 연에서는 눈이 온단다. 시의 배경은 이제 막 여름이 지난 가을인데 눈이 오다니…. 베개라도 터진 걸까? 아니면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횡설수설일까? 어떤 말도 맞장구치던 연인들이 제가끔 다른 말을 하기 시작하는 건 사랑이 기우뚱거리는 조짐일지도. 그러다 할 말이 뚝 끊기겠지. 사랑의 조락(凋落)을 암시하듯 때는 가을날 저녁, 창밖 하늘에 진홍빛 노을이 가슴을 죄며 퍼져 나가네. 내 사랑아, 다시 한 번 사랑한다고 말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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