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38>좋은 사람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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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들
―이현승(1973∼ )

누군가 일요일의 벽에 못을 박는다.
텅텅 울리는 깡통처럼
인내심은 금세 바닥을 드러낸다.

일요일의 벽에 박힌 못은
월요일의 벽에도 여전히 매달려 있고
화요일의 벽에도 균열은 나아가겠지만

이웃은 누구인가?
이웃은 냄새를 풍기는 자이며,
이웃은 소리를 내는 자이고
그냥 이웃하고 사는 자일뿐인데,

좋은 이웃을 만나는 일은
나쁜 이웃을 만나는 일처럼 어렵지 않은가.
하지만 누가 이웃을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
좋은 이웃으로 남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이웃에게는 냄새가 있고
소리가 있고 또 감정이 있다.
일요일의 이웃은 냄새를 피우고
월요일은 소리를,
일주일은 감정들로 가득해
두드리고 두드려도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우리는 틈이 갈라지는 벽을 이웃하고 있다.
냄새와 감정을 나누는 이웃이 있다.
못과 망치를 빌리러 갈 이웃이 있다.
이웃에게 못과 망치를 빌리러 가자.


친구가 새 거처 집들이를 했다. 밤 11시쯤 인터폰이 울렸다. 공사하는 소리가 난다고 관리실에 민원이 들어왔단다. “저희 집은 아닌데요.” 집주인이 인터폰을 내려놓은 뒤 우리는 어디서 드릴 소리라도 나나 귀 기울였다. 15층 저 아래에서 거리의 소음이 뿌옇게 떠올라올 뿐이었다. 갸우뚱거리던 우리의 눈이 일제히 식탁 한 귀퉁이에 가지런히 쌓아놓은 마작패로 향했다. “저 소리 갖고 그러나?” 저녁 먹고 한 시간쯤 심심풀이로 마작을 했는데, 식탁 상판에 인조 상아패를 내려놓는 소리가 작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면서 오피스텔이라는 공간의 조건에 좀 숨이 막혔다. 민원인이 집을 잘못 짚은 것으로 내린 결론은 잠시 후 뒤집어졌다. 자리를 마치고 문을 나서는데 옆 집 문이 팩 열리더니 한 아가씨가 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는 어정쩡 바라보는 우리를 죽일 듯 노려보고는 도로 문을 쾅 닫았다. 아, 내 친구의 유난히 ‘감정이 있는’ 이웃이어라.

대다수 사람이 공용주택에 오글오글 모여 사는 오늘날의 서울. ‘이웃’이란 ‘층간 소음 문제’의 피해자거나 가해자일 뿐이라는 현실을 이현승은 특유의 관조적 어법으로 유머러스하게 펼치며 참으로 명철한 해법도 제시한다. ‘이웃에게 못과 망치를 빌리러 가자!’ 내 이웃을 동참시키세. 소음에도 냄새에도.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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