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대선 패장에 휘둘린 아까운 1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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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척했던 노 정부 첫해, 불법 대선자금 잇단 측근비리
민정수석은 검찰 공개비난까지
‘새 정부 잘되는 꼴 못본다’식… 문재인이 앞장선 비토크라시
오죽하면 노무현재단에서도 ‘새로운 리더’에 희망을 둘까

김순덕 논설실장
김순덕 논설실장
꼭 10년 전인 2003년 12월 30일 동아일보 1면에 주먹만 한 제목의 톱기사가 실렸다. ‘노 대통령 측근비리에 개입’.

대선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장수천 채무 변제로 민주당 지방선거 잔금을 주도록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에게 지시했고, 썬앤문에서 이광재 전 국정상황실장이 선거자금을 받는 자리에 합석했다는 대검 중수부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였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노 대통령은 “우리가 티코라면 저쪽(한나라당)은 리무진”이라고 즉각 물귀신 작전을 폈다. 문재인 민정수석은 별도의 논평까지 내고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검찰을 매섭게 몰아세웠다.

모두 나중에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들이다. 그런데도 당시 그들은 장희빈의 모함을 받는 인현왕후라도 되는 양, 뒤끝 작렬했고 오래갔다. 노 정부 출범 첫해 동아일보가 뽑은 10대 뉴스엔 ‘노 측근비리 수사-특검법 통과’ ‘(측근비리 관련) 재신임 선언’ ‘민주당 분당과 신4당 체제 개편’ 등 노무현과 친노(친노무현) 관련 파문이 세 꼭지나 됐다.

별로 유쾌하지도 않은 과거를 되새김질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를 갈등으로 몰고 간 주인공이 바로 그때 그 세력이어서다. 세계가 골디락스(물가상승 없는 고성장)를 구가했던 2000년대 초중반, 한물간 이념 공방과 정책으로 나라를 끝없는 갈등으로 몰아넣은 그들이 2013년에는 새 정부가 한 발짝도 못 나가도록 끈질기게 발목을 잡았다.

비토크라시(vetocracy). 강력한 반대세력이 정부 여당에서 하려는 바를 사사건건 가로막는 것을 미국 스탠퍼드대 석좌교수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비토크라시라고 했다. 거부한다는 비토(veto)와 민주주의(democracy)를 합친 말이지만 우리에게는 ‘거부민주주의’라는 단어도 아깝다. 이 정부가 잘하는 꼴은 볼 수 없다는, 쉽게 말해 발목잡기다.

맨 앞에 대통령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나와 패배한 문재인 의원이 있다. 10년 전엔 민정수석으로 서슬 퍼렇게 검찰 중립을 뒤흔들던 그가 꼭 1년 전 오늘 “민주당이 거듭나는 데 힘을 보태겠다”고 입을 연 것을 시작으로, 정국이 정상으로 돌아갈 만하면 반드시 등장해선 발목을 잡았다. 올해 동아일보 10대 뉴스 중 두 꼭지(국정원 대선개입 의혹과 대선 불복 논란, 정상회담 회의록 폐기와 NLL 발언 논란)가 문재인과 관련됐을 정도다.

국가기관은 눈곱만큼도 선거개입 의혹을 일으켜선 안 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국민의 50.3%가 ‘조직적 대선 개입’으로 판단하면서도 63.7%는 ‘대선 승패에 별 영향을 못 미쳤을 것’이라고 보는 게 현실이다(지난달 동아일보 여론조사). 군 사이버사령부 트윗질 사건이 드러난 뒤에도 대통령 지지도는 50%를 넘었다. 노무현 첫해의 성적표가 궁금한가. 2004년 1월 1일 동아일보 톱기사가 “대통령 국정 잘못 수행 68%”다.

우리 국민은 때론 불같아도, 제 잇속만 아는 정치인보다 심지 깊고 현명하다. 그래서 10년 전 노무현이 “대통령 못해먹겠다”고 했지만 “측근 비리로 하야하는 건 반대”(67%) 했다. 그러나 지나치면, 염증을 내고 돌아선다. 죄인을 자처해야 할 패장(敗將)이 1년째 발목잡기를 자행하는 게 징그러워 현재 민주당 지지율이 바닥이고, 호남조차 안철수 신당을 고대하는 것이다.

최근 문재인은 한 인터뷰에서 정부의 1년 국정을 낙제점이라고 했다. 묻고 싶다. 이 정부에 노 정권 때처럼 대통령까지 연루된 측근 비리가 있는가. 경제가 세계의 평균성장률보다 떨어졌는가. 아니면 대통령이 “의회민주주의를 크게 훼손시켰다”는 헌법재판소의 경고라도 받았는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10년 전 청와대에서 과히 유능하지 못했던 문재인은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

민주당은 정신 차리기 바란다. 10년 전 민주당 지방선거 자금을 대통령 개인 빚 갚는 데 써버렸던 친노에 마냥 끌려 다녀선 수권정당으로 거듭날 수 없다. 심지어 노무현재단의 이병완 이사장조차 열흘 전 “(리더십 재도전은) 그분의 정치적 의견이고 (중략) 내년 지방선거가 지나면 (중략) 새로운 리더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지 않을까…”라고 사실상 문재인을 밀어내는 분위기다.

정부 여당도 문재인의 계산된 비토크라시에 허연 발목을 수시로 노출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 국민이 좀비 같은 물귀신 작전에 더는 말려들지 말았으면 좋겠다. 2014년이 내일모레다.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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