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부형권]‘국회의원 조순형’이 그립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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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형권 정치부 차장
부형권 정치부 차장
“선배, 기자(記者)와 정자(精子)의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

“사람 되기 어려운 거래요.”

한때 언론계에서 이런 자학(自虐)개그가 유행했다. 후배의 농담에 따라 웃었지만 뒷맛이 떫었다. 기자가 비(非)인간적인가. 동료 선후배 중에는 너무 인간적이어서 탈인 경우가 훨씬 많은데…. 우리 회사만 그런가. 나름 찾은 답은 언론의 비판 고발 기능 때문이다. 취재원들은 종종 “왜 잘한 것은 안 써주고, 잘못한 것만 지적하느냐”고 한다. 시시(是是)는 없고 비비(非非)만 있다고 한다.

기자도 사람이다. 날카로운 비판의 시선이 존경과 애정의 눈길로 바뀌는 경험을 적지 않게 한다. 조순형 전 의원(78·7선)이 나에겐 그런 존재였다.

그를 처음 본 건 1998년 11월 헌법재판소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장. 그는 한 사형수가 사형제도에 대해 낸 헌법소원을 헌재가 4년 넘게 끌다 결국 사형이 집행된 뒤 사건을 종결한 것을 질타했다. “헌재에 삶의 마지막 기대를 걸던 사형수의 심정을 생각해 봤느냐.” 피 끓는 사회부 기자의 눈에 ‘헌재의 무소신 늦장 결정’을 꾸짖는 그는 멋졌다.

2001∼2004년 국회를 출입하면서 국회의원을 세 부류로 나눠 보게 됐다. 첫째, 지역의원. 지역 내 경조사 챙기는 일에 재선(再選)의 운명이 달렸다고 생각한다. 둘째, 정당(정파)의원. 입 밖으로 나오는 언어의 대부분이 상대 당이나 정파에 대한 막말과 욕설이다. 재선의 활로는 줄서기에서 찾는다. 셋째, 국회의원. 국회는 삼권분립의 한 축인 입법부임을 자각한다. 물론 재선되고 싶지만 낙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야 여야를 초월하고 때론 국민감정마저 거스르는 소신과 용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다시 만난 그는 국회의원이었다. 늘 헌법을 곁에 두고 있었다. 2003년 6월 법사위에서 직무감찰 위주의 감사원 기능에 큰 변화를 주겠다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국가개조론’을 비판했다. “감사원의 직무감찰권은 헌법이 부여한 권한인데 어떻게 부처로 넘기느냐. 감사원은 (청와대에) 헌법 공부부터 시켜라.” 2006년 노 대통령이 지명한 첫 여성 헌재소장 후보의 국회 임명동의가 결국 무산된 것도 야당의 수많은 비난 논평이 아니라 ‘조순형의 헌법’ 때문이었다.

돌이켜 보니 그와 마주앉아 밥 한번 제대로 먹은 적이 없다. 취재는 주로 저녁 시간 집에 있는 그와 전화 통화로 했다. 좋아하는 사람은 닮고 싶어진다. 민감한 정치 현안이 터졌을 때 헌법과 관련 법률을 먼저 찾아보는 버릇이 생겼다. 스스로 ‘나는 정당 출입기자가 아니라 입법부 담당기자’임을 늘 자각하려 했던 기억이다. 정부가 실질적으로 만든 법안을 의원 이름으로 발의하는 기형적 입법행태를 비판하는 기사(‘무늬만 의원입법’)를 썼을 때 그로부터 “좋은 기사”라는 칭찬 전화를 받았다. 10년 전 일이지만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는 당시 느낌이 생생하다.

요즘 정치권은 대선 불복이냐, 헌법 불복이냐를 놓고 싸운다. 그가 늘 일갈했던 것처럼 ‘헌법 공부는 제대로 하고’ 싸우는 것인지 궁금하다. 국회사무처의 한 간부는 “조순형이 떠난 국회에서 그 빈자리를 채울 ‘의정 스타’가 아직 안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당 대표나 대선주자 역할도 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의 부인은 기자에게 “남편이 국회의원은 굉장히 잘했지만 (당 대표 등) 다른 역할은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안타깝지만 동의한다.

‘국회의원 조순형’, 그가 그립다.

부형권 정치부 차장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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