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하종대]이집트가 주는 교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하종대 국제부장
하종대 국제부장
이집트가 또다시 대혼란 속으로 빠지고 있다.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이 군부에 의해 쫓겨났지만 정파 간 마찰과 갈등은 더욱 첨예해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시작된 유혈 시위로 8일 현재 70여 명이 숨지고 1900여 명이 다쳤다. 게다가 유혈 시위는 점차 격렬해지고 이에 대한 군부의 진압도 과격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 이집트의 정국이 더욱 악화할 개연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슬람주의 및 세속주의 세력과 군부 등 이집트를 대표하는 3대 정치세력이 대화와 타협보다는 다수 군중을 동원해 위세를 과시하거나 물리력을 통해 상대를 제압하려 하기 때문이다.

갑작스레 권력을 잃은 무르시 지지 이슬람주의 세력은 대규모 시위를 통해 권력을 되찾으려 한다. 세속주의 세력으로 불리는 무르시 반대파 역시 집단 시위로 민심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과시하려 한다. 이집트 경제력의 40%를 쥐고 있는 군부는 유혈 시위를 빌미 삼아 어렵게 틔운 민주주의의 싹을 짓뭉개고 있다.

이집트 군부의 쿠데타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선출된 대통령이 축출됐지만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의 선진 민주주의 국가는 방관 태도를 취하고 있다. 민주주의 가치보다는 자국의 이익에 따라 지지 대상이 달라질 수 있음을 행동으로 보여 주고 있다.

2년 전 시민혁명을 통해 30년 장기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를 몰아내고 어렵사리 첫걸음을 내디딘 이집트의 민주주의는 이처럼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상황은 이집트만이 아니다. 아랍연맹 22개국 가운데 ‘아랍의 봄’을 겪은 나라는 16개국이다. 이 중 그 나름대로 민주화를 이룩했다고 할 만한 나라는 튀니지 모로코 등 다섯 나라뿐이다. 나머지 나라는 대부분 여전히 민주화 투쟁이 진행 중이거나 설령 독재정권은 무너졌다 하더라도 내란에 빠진 상태다. 리비아 시리아 예멘 이집트 등 16개 나라에서 2년에 걸쳐 민주주의 제단에 바친 약 4만 명의 희생이 물거품이 될 판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무엇보다 민주화 시위 이후 새로 집권한 정부들이 민생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민혁명 이후 최근 2년간 이집트의 경제성장률은 2% 안팎. 과거 독재시대 5%의 절반도 안 된다. 이집트에서는 하루 2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사람이 인구의 40%에 이른다. 서민들에겐 민주주의보다도 생존의 문제가 더 절실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아랍국가 가운데 기존 권위주의 체제의 왕정이 그대로 유지되는 곳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경제적 위기가 없는 나라들이다. 국가가 석유 등의 자원을 바탕으로 서민들의 경제적 불만이 폭발하지 않도록 조절해 민주화 요구 시위가 시민혁명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아랍의 봄’은 중동지역에만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앙골라부터 가봉 우간다 등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민주화 시위를 촉발했고 알바니아 아르메니아 크로아티아 등 유럽지역은 물론 몰디브 미얀마까지 전 세계의 민주화에 상당한 영향을 줬다. 심지어 한국과의 체제 경쟁에서 일찌감치 뒤처진 채 어렵사리 연명해 온 북한 정권에도 두려움을 안겨 줄 만큼 역사 진보의 물줄기였다. 일부 시민단체가 이집트와 리비아의 민주화 시위를 적은 전단을 북한으로 올려 보내자 체제 불안을 느낀 북한 정권은 남쪽에 군사적 보복까지 들먹일 정도였다.

결국 이집트 사태는 민주주의 가치도, 역사적 진보도 서민의 경제적 불만을 해결하지 못하면 지속하기 어렵다는 교훈을 주고 있는 셈이다.

이집트는 6000년 전 찬란한 문화를 자랑했던 나라다. 인구도 8500만 명으로 남북한 인구와 비슷하다. 이집트 각 정치 세력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전체 국민의 여망을 실현하는 정부를 잘 구성해 민주주의가 후퇴하지 않길 바란다. 이를 통해 6000년 전의 영화를 다시 한번 구현하길 기대한다.

하종대 국제부장 orionha@donga.com
#이집트#무함마드 무르시#유혈 시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