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승건]잘했다고 잘 가르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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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그런 (쉬운) 공을 왜 못 때리는지 모르겠어요. 답답할 때가 많았죠.”

몇 년 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만난 프로구단 스카우트의 말이다. 그는 선수 시절 최고의 타자였고 타격 코치를 지냈다.

“프로 선수들이 어떻게 슛도 제대로 못 쏩니까. 나는 이해가 안 돼요.” 선수 시절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프로농구 감독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그들에 필적할 만한 기량을 가진 선수는 별로 없는 게 사실이니 한편으로는 수긍이 갔다. 그래도 그들의 말은 당황스러웠다. 자신의 눈높이로 보면 마음에 드는 선수가 있으랴만 인내심을 갖고 체계적인 훈련과 격려를 통해 선수들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게 지도자의 역할이 아니던가. ‘스타플레이어 출신은 뛰어난 감독이 될 수 없다’는 속설은, 예외가 있지만 그래서 나온 말일 것이다.

프로나 아마추어를 막론하고 화려한 경력을 가진 선수 출신 지도자는 매력적인 영입 대상이다. 팬들과 언론의 관심을 끄는 데도 효과 만점이다. 그래서 재미를 본 곳도 적지 않다.

몇 년 전만 해도 고교야구 지도자 가운데는 프로야구 스타 출신이 꽤 많았다. 학교와 학부모는 선수 시절의 명성을 믿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그들 중 성공한 지도자는 많지 않았다. 최근 10년 동안 황금사자기를 품에 안은 고교야구 사령탑 가운데 프로 선수 출신은 지난해 북일고의 이정훈 현 한화 2군 감독이 유일하다.

지난 주말 막을 내린 제67회 황금사자기 결승에서는 서울의 덕수고(우승)와 창원의 마산고가 맞붙었다. 덕수고 정윤진 감독(42)과 마산고 이효근 감독(45) 모두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를 했지만 프로 구단의 선택을 받기에는 실력이 부족했다. 정 감독은 고교 졸업 직후 상무에 입단해 힘겹게 야구를 계속했지만 전역한 뒤 더는 갈 곳이 없었다. 야구를 아예 그만두고 이런저런 일을 하다 1994년 모교에서 코치로 불러준 덕분에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 감독은 그나마 상무 전역 후 실업팀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지만 ‘야구선수’로 그를 알아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 역시 2002년 11월에 모교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하며 제2의 야구인생을 열었다. 두 사람 모두 오랜 시간을 학생들과 함께하며 팀의 기초를 탄탄하게 다져 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패한 선수’로서의 경험이 있다는 게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 큰 힘이 됐다고 전했다.

정 감독은 말했다. “나 같은 전철을 밟지 않게 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이 감독의 말. “야구를 못해 힘들어하는 제자를 보면 예전의 내 생각이 난다. 그 마음을 잘 알기에 허투루 할 수 없었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별개다. 잘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why@donga.com
#황금사자기#프로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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