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의 달콤쌉싸름한 철학]바가바드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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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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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 로마서를 읽는 건 어쩐지 어울리지 않지만 인도에서 ‘바가바드기타’를 읽는 건 제법 어울리지 않나요? 로마와 어울리는 건 차라리 ‘로마의 휴일’입니다. 오드리 헵번을 기억하면서 로마시내를 구석구석 걷다 보면 로마가 허용하는 낭만에 취해 ‘나’를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나’는 내가 믿는 것보다 훨씬 자유로운 사람이고 훨씬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여행을 하면서는 책을 읽지 않는 게 오래된 습관인데도 남인도 벵골 바닷가에서는 ‘바가바드기타’가 찾아왔네요. 그 책을 번역한 길희성 교수와 함께한 인도여행이고 보니 선생님이 바가바드기타를 줄줄이 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대가 관여할 일은 오직 행위일 뿐, 어느 때이건 결과는 아니다. 행위의 결과를 동기로 삼지 말며, 행위하지 않음에 집착하지도 말라.’

행위하라, 결과에 구애받지 말고! 그 뜻이지요? 결과를 짐작해서 스스로 속박을 만들지도 말고, 놓아야 한다는 강박증을 앓지도 말고 오직 행위에만 관여하라는 말입니다. 평생 간디가 삶의 지침서로 삼은 책답지 않습니까.

그렇게 충고하는 저 현자는 태양의 신이고, 사랑의 신인 크리슈나입니다. 크리슈나에게 “어찌하오리까”라고 묻는 이는 바로 아르주나 왕자입니다. 모두가 떠받들었을 때 모두를 무시한 오만했던 왕자는 전쟁이라는 감당하기 힘든 사태를 만나 오만을 토해내고 인생공부를 하게 된 거지요. 더구나 쫓고 쫓기고, 죽고 죽이는 가혹한 전쟁터에서 섬멸해야 하는 적은 다름 아닌 식구들입니다. 왕권을 놓고 사촌과의 전쟁이 시작된 겁니다.

“내가 왜 이런 전쟁을 하고 있습니까? 크리슈나여! 삶은 너무 잔인하고 가혹합니다. 내 마음은 슬픔 속에 소용돌이칩니다. 서 있을 수도 없습니다.”

벵골 만 해변에는 모래 속에 파묻혀 천년을 지내다 19세기에 발견된 사원이 있습니다. 바로 아르주나 왕자가 치러야 했던 전쟁을 묘사한 사원, 파이브 라타스입니다. 아르주나의 다섯 형제를 기리는 사원인데 당연히 아르주나의 신, 크리슈나도 있습니다. 휘청거리는 아르주나를 잡아주는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에게 얼마나 믿음직스럽고 신비한 존재겠습니까.

“오늘날 사람들은 만족을 모르는 욕망에 내몰림으로써 음모와 분노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사람들은 부와 재물을 좇으며 삶을 허비합니다. 숨이 막힐 때까지 자만과 기만으로 채웁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낙담으로 가라앉고 있습니다.” 숨이 막힐 때까지 자만과 기만을 채우는 우리! 그러니 숨이 막혀야 비로소 자만과 기만을 토해내겠지요.

같은 피를 나눠가지고 태어나 같은 꿈을 꾸며 성장한 자를 적으로 맞아야 하는 운명은 오만한 전사들이 스스로 만든 운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입으로는 평화를, 대화를 원한다고 하면서 귀는 막고, 왜 내 뜻대로 하지 않는 거냐고 내 할 말만 속사포처럼 쏘아낸 경험, 없으십니까. 그때의 말은 대화의 악기가 아니라 분노의 검이지요. 그런 경험을 해보면 알게 됩니다. 그 분노의 검에 다치는 자,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비슈누의 화신이며 지고의 신인 크리슈나가 바로 아르주나의 마부였다는 사실! 어쩌면 우리의 신은 그렇게 높고 높은 보좌만 고집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부의 옷이나 권력의 옷으로 치장할 필요 없는 그는 시시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평범한 모습으로 찾아와 엉킨 운명의 실타래를 풀 수 있도록 ‘나’를 격려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여행#책#바가바드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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